왕작천년계( 枉作千年計: 부질없이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

                                                                    - 낙화

명심보감 존심편에 보면 인생백세인(人生百歲人)이나 왕작천년계(枉作千年計)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사람은 백살 사는 사람이 없건만 부질없이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다.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직도 낮의 햇살은 뜨겁지만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가을이다. 근데 이렇게 계절이 바뀌면 많은 생각이 든다. 벌써 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나름대로 상반기 결산을 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와 같은 생각도 해 본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단순히 제목에서 본다면 꽃이 진다는 뜻이니까 봄에 더 잘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써 놓은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이다.
우리네 삶도 꽃이 피는 때가 있다면 지는 때도 있는 것이 분명한 이치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꽃이 지는 때를 일을 하다보면 분명히 언젠가 그만두어야 하는 때라고 도 할 수 있는데 그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참 많은 미련이 생긴다. 경제적인 문제가 걸릴 때도 있고 아니면 정말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걸릴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가 우리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가 져서 열매를 맺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이별의 아픔이 영혼의 성숙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이것이 바로 욕심을 부리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구절처럼 우리는 아무리 다 잘살아도 백년도 살기 어려운데 많이 갖고만 싶어한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즉 한 발짝 좀 떨어져서 상황을 볼 때 의외로 많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꽃이 떨어져야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 한층 더 성숙한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형기(1933- )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불교과 졸업. 1949년 『문예』지에 「비오는 날」 외 2편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제 2회 한국문학가상 수상.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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