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 근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

- 머슴 대길이

명심보감 정기편에 보면 태공왈(太公曰)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요 신시호신지부(愼是護身之符) 란 구절이 있다. 이 뜻은 태공이 말하였다. “근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가 될 것이요, 신중함은 몸을 보호하는 신표이다.” 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과 신중함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강이다. 개강이 오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나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근면과 신중함 이 두 가지를 잘 실천하고 있는가? 정말 좋은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 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일까?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요즘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시가 하나 있다.

머슴 대길이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 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


이 작품은 머슴 대길이라는 평범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시이다. 이 작품은 고은 시인의 작품으로 『만인보』에 실린 작품이다. 『만인보』는 시로 쓴 인물 사전이라 하며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로 유명하다. 특히 특정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우선은 대길이의 인물됨을 살펴보면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른 아침에는 동네 길을 깨끗이 청소하고 밤에는 나한테 한글을 가르쳐 주어 내가 장화홍련전 등을 잘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글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대길이가 민족의식이 강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곧고 바른 사람이며, 가난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함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게 작대기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들을 많이 하였던 사람이고  홑적삼 큰아기따위에는 눈요기도 하지 않는 인격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대길이가 시인에게는 “불빛”으로서 참된 삶을 깨우쳐주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대길이는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삶을 살지만 수난의 역사를 이겨 나가며 넉넉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대변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시인에게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인생의 큰 스승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민족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좋은 스승을 만드는 덕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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