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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분함을 참는다 - 사마천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 한때의 분함을 참는다.) – 사마천

명심보감 계성편에 보면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이면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때의 분함을 참아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가 쓴 <사기>는  인간중심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고 생생한 인간상을 담아냈다. 또한 <본기>는 역사서로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꼭 읽어보아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

                                                          박경리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당하고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사마천은 역사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사후 여러 문헌에 의하여 추측할 뿐이다. 그 기록들에 의하면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출생한 사람으로 태사령(太史令)을 지낸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사령이란 천문관측, 달력의 개편, 국가 대사(大事)와 조정 의례(儀禮)의 기록 등을 맡는 직책이었다. 사마담은 사관의 지위가 점차 기술직으로 천시되고, 옛 기록이 사라져가는 것에 깊은 비애를 느끼고 사서편찬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좋은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미 10대에 고문서에 통달했으며, 20대에는 전국 각지의 주요 사적지를 직접 답사, 각지의 풍속과 중요 인물들의 체험담 등을 채록하는 등 귀중한 체험을 했다. 아버지가 죽고, 사마천이 태사령의 직에 올랐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의 집필을 결심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남아 있던 시, 서, 춘추, 전국책등과 궁중에 비장되어 있는 각종 서적, 상소문, 국가의 포고문 등을 섭렵, 사기의 집필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한 이릉을 변호한 것이 한 무제의 미움을 사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사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 오십만냥으로 감형받는 것과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고 환관이 되었다.

이때의 그의 심경은 뒷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극형을 받으면서도 태연스럽게 부끄러운 빛조차 띠지 않았던 것은 이 저술을 미완성으로 긑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책을 완성하여 명산에 소장하고 각지의 지식인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저의 수치도 충분히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설령 이 몸이 산산조각난다 한들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훗날 무제의 화가 누그러지자 다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중서령(中書令)이 되었고 사기를 완성한다.

만약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한 것은 정당한 것임을 계속 주장하고 그때 궁형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죽었다면 그리고 궁형을 받고서도 그 치욕을 참지 못해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때로는 화나는 일이 많아도 우리가 한 번쯤 참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했고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가족모티프와 근대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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