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시당면려(及時當勉勵 :때에 이르러 마땅히 학문에 힘써라)

-남진우의 「타오르는 책」







명심보감 권학편(勸學篇)에 보면 도연명시(陶淵明詩云)에 운(云)하였으되 성년(盛年)은 부중래(不重來)하고 일일(一日)은 난재신(難再晨)이니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하라 세월(歲月)은 不待人(부대인)이니라




이 뜻은 도연명의 시에 말하였다. “좋은 나이는 두 번 거듭 오지 아니하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있지 않다. 때가 되거든  마땅히 학문에 힘써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것이다.




봄이다. 올해는 하도 추워서 봄이 올 것 같지 않더니 그래도 꽃도 피고 봄이 왔다. 책 읽고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된 것이다. 물론 놀기에도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연명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있어 책은 늘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 있다.  남진우 시인의『타오르는 책』이라는 시집이다. 



타오르는 책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남진우, 타오르는 책, 문학과지성사, 2001.)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이다. 옛날에 시인은 “타오르는 책”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를 꿈꾸고 있는 시이다.

그렇다면 옛날에 책이 타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 자신의 열정일 것이다. 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읽기에, 행간을 따라 열정은 곧 두 눈의 불꽃으로 표출되고 그 열정의 불이 번져가 책을 읽을 때마다 타오르게 해 재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하는 탄식을 하는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이것도 두 가지 경우에 근거해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자신의 내면에 책에 대한 열정이 사라짐에 대한 탄식일 수 있다.

또 하나는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이 없음에 대한 탄식이다. 21세기는 과잉 생산되는 인쇄물의 홍수에서 정말로 좋은 책을 찾기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인도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네”에서 보여지듯이 얄팍한 지식과 정보만을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책들을 보며 현재 나오는 책의 허상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시인에게 있어 책읽기는 무엇일까?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라는 구절을 통해 생각해본다면 시인은 세상으로 가려면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것이고 이것은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열정을 갖고 세상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고 그럴 수 있는 기반은 바로 “타오르는 책”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지식이 단지 자기만 아는데서 끝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세상과의 소통을 하고자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식은 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데 있어 문제가 있는 것들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인의 시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에 대한 열정과 행동의 기반이 되는 그런 타오르는 책을 갖고 싶다. 또한 이런 마음이 바로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학문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남진우

196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 이 당선되었으며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 연금술사의 꿈-정현종론 」 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현재까지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집으로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타오르는 책』이 있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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