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모르겠습니다"나 "기억나지 않습니다"가 유행이었다면, 요즘엔 "미안합니다"가 유행이다. 어디서의 유행이냐고? 바로 인사청문회 때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답변에서의 유행이다. 과거에는 변명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인정하는 것이 대세이긴 하다. 변명과 회피에서 인정으로 바뀐 것이 진화라면 진화고, 개선된 것이라면 개선이 분명하긴 하다. 그런데 이또한 고도의 답변전략이다. 미안하다고 인정하면 면죄부를 쒸워줄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인정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지, 면죄부를 받으려해선 곤란하지 않겠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고, 책임도 따른다. 특히나 사회지도층이라면 더더욱 책임이 커야 한다. 미안하단 말로 떼울 성질이 결코 아니다.

"잘못해놓고 미안하다는 말로 다 될 것 같으면, 법은 왜 있고 경찰은 또 왜 있나!"
올해 히트상품 중 하나로 꼽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온 대사다. 드라마 속에선 웃긴 대사같았지만, 막상 현실로 나오면 아주 공감가는 얘기다. 왜 뜬금없이 지난 드라마 대사 얘기를 꺼내냐 하겠지만, 요즘 인사청문회에서 장관이나 고위직 후보자들이 '미안합니다'로 자신의 과오를 씻을듯이 드는 행태 때문이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이고, 다운계약서나 탈세도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다.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그렇다 치지만,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떼우면 다 해결될 것 같으면 말그대로 법은 왜 있고 경찰은 왜 있느냐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방송사 사이트에서 동영상 다시보기나, 꽃남 DVD라도 좀 구해서 보라구 하고 싶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드마라를 사회지도층들은 못봤나 보다. 시시해보여서 안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시하고 유치해보이는 드라마 속에서도 그들이 새겨야할 놀라운 말이 들어있다. 그 말은 애들조차도 따라했던 말이다. 심지어 꽃남에서 그 대사를 읊은게 부잣집 아들아니었던가. 사회지도층은 그래야 한다. 미안하단 말로 해결할게 아니라 책임질건 지고 법의 심판 받을건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존경받고 지지받아야할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더 냉정하게 판단해봐야 한다. 국가의 고위직은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자리다. 국민보기 부끄러워서야 어디 국민 위할 기회라도 제대로 가지겠는가. 당당하게 국민 눈치가 아닌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선 적어도 도덕성과 능력에서만큼은 당당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누가 존경하지 않고 누가 지지하지 않겠는가. 이미 국민들도 알건 다 안다. 국민이 더이상 중학생 수준은 아닌 것이다. 선진국의 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들이 어떤지 우리 국민들도 잘 보고 익히 알고있다는 걸 잊지말았으면.
인사청문회에 불려나온 후보자들은 모두 사회지도층이다. 그들이 인생에서 가장 곤혹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바로 인사청문회가 아닐까. 속속들이 자신의 과거가 매의 눈을 가진 날카로운 시선들에 의해 하나둘 들춰지고, 오래되어 자신도 기억못했던 과오까지도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줄 알았다면 후보자 수락을 하지 않는 것디 더 나았을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때 과오란 과오는 다 드러내고 결국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게 되는 경우라면 창피는 당할대로 당하고 실익은 없는 최악의 경우가 되는 것이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청문회를 통과해서 장관자리에 오른다면, 적어도 잃는대신 얻는 것이 있어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고 자기합리화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자기의 과오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과오를 가지고서도 오만한건지 기억력이 모자란건지 과감하게 후보자 지명을 수락하는 사람도 문제다. 그런 사람밖에 없어서 그중에 골랐다는 것도 문제고, 능력이 뛰어나면 도덕적 결함은 있을 수 있다는 능력과 도덕성의 반비례 관계도 문제다.
 
요즘 인사청문회에선 사회지도층의 탈법불감증을 너무 쉽게 보게 된다. 그냥 미안해 하기만 할 문제는 분명 아닌데, 미안하다는 걸로 떼어려는걸 보면 뻔뻔한건지 오만한건지 무지한건지 구분조차 안갈때가 많다.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 없다지만, 먼지가 아닌 좀 굵은 덩어리들이 나오는 것은 문제는 문제다. 그렇게 쓸만한 사람이 없는지도 의아하고, 사회지도층이 되려면 저정도의 과오는 필수가 되어야하는게 정말 현실인지도 의아하다. 충분히 따져보고 검증해서 내세운 사람들일텐데 국민정서를 해치는 과오들이 툭툭 튀어나오는걸 보면 세상에 도덕적이고 깨끗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아니면 도덕적이고 깨끗한 사람은 너무 완벽해보여 비인간적으로 보일까봐 인간적으로 보일만한 빈틈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는 고도의 전략은 아닐지 억지를 부려도 본다.

정치인의 태도는 국민 수준의 바로미터다. 국민의 대표들인만큼 그들의 도덕성이나 그들의 대응능력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으로 가늠된다. 대표가 엉망이면 국민 수준도 엉망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엉망인 사람을 뽑아준것도 국민들이니까. 그렇기에 국민들 싸잡아서 수준절하시키지 않으려면 대표들이 수준을 좀 높여야 한다. 사람에겐 돈도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국민소득 몇만불 시대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자존심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게 더 급하다. 자존심이 살아야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생기고, 애국심도 생기지 않겠나. 자랑스런 대한민국이길 간절히 바란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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