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같은 회사가 싫다

입력 2009-06-02 09:31 수정 2009-06-02 09:31
가족같은 회사? 이것은 허상이다. 회사가 가족같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조심하라. 결코 좋은 회사일 가능성은 낮으니까. 내세울 것이 없을때 쉽게 하기 좋은 말이 가족같다는 말이다. 회사는 사적인 공간이나 사적인 관계가 아니다. 지극히 공적이고, 계약에 얽힌 냉정한 관계이다. 여기서 끈끈함이나 인간적인 정을 내세우는 것은 넌센스이다. 정에 이끌려 책임과 의무가 약해질 수도 있다.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우며 월급을 좀 늦게 줄수도 있고, 임금체불하거나 원래 계약보다 적은 금액을 줄 수도 있고, 야근수당도 없이 야근시킬 수 있고, 당연한 권리인 휴가도 못쓰게 할 수 있다. 회사는 남과 남이 계약에 의해 만든 관계다. 돈을 주고받고 그에 상응하는 노동을 하는 지극히 냉정한 계약관계다. 가족같은 기업이 되려면, 우선 냉정한 계약관계가 아주 충실히 만족스럽게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고나서 정을 강조하던지, 끈끈함을 강조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은 상관없다.

직원들에게 회식도 자주 시켜주고, 같이 늦게까지 어울려 술도 마시고, 직원들 생일이나 축하할 일도 잘 챙겨주고, 주기적으로 직원들과 개인면담도 하고, 철마다 워크샵을 빙자해서 1박2일로 먹고노는 엠티를 가는 회사가 있다. 특히 술자리나 워크샵 때면 주로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자, 계속 관계를 지속시켜가자, 앞으로 회사가 커지면 그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 는 등의 얘길 자주 한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직원들에게 인기 있고 신뢰받는 좋은 경영자의 사례처럼 보이고, 조직이 아주 끈끈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원들이 계속 퇴사하고, 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는게 반복된다. 퇴사하는 직원치고 웃으며 나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왜 그럴까. 가족같다는데 뭐가 문제인걸까.

바로, 가족같음에 대한 이중적 행동 때문이다. 정말 가족이라면 잘못도 슬쩍 눈감아도 주고, 격려도 해주고, 칭찬과 동기부여도 해주고,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능력이 모자라면 키워주기 위한 투자를 하거나 기다려주는 배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떨때는 가족같음을 강조하다가, 어떤 때에는 지극히 냉정한 계약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직원이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하면 감정선을 건드리는 직설적 얘기를 하거나 직원을 닥달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을 못믿거나 쉽게 자르려는 태도도 가진다. 잦은 야근도 방조하면서, 직원들의 환경개선에는 투자않고 말로만 직원을 위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경영자를 얼마나 믿고 따를 수 있겠나.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잘 돌아갈 수 있겠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회사에, 이런 경영자들 참 많다. 특정 회사의 사례가 아니라, 수많은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에서 보편적으로 잘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은 직원들에게 아주 잘하는데 직원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이런 경영자들은 대개 그냥 가까이 지내면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같이 일해보면 관계가 악화되는 사람이다. 결코 공적인 업무관계에 놓이기 싫은 사람인 것이다. 그냥 사적으로만 알면서 서로 책임질 일도 없고, 서로 책임지울 일도 없고, 서로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서로 경제적 득될 일도 없이 그냥 좋은 주변사람 중 하나로서 알고 지내기엔 좋은 사람이다. 우리 주위에는 회사를 차린 사람들은 많아도,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경영자는 드물다. 무수한 경영자들 중에서 경영자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오너들일수록 경영자 마인드가 부재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크고작은 기업에서 보다 전문적인 경영자들이 필요하다. 대기업에서는 전문경영자 체제가 굳어졌지만, 여전히 벤처나 중소기업에서는 오너중심의 경영체제가 보편적이다.

분명 직원들 먹여살리려고 사업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직원들도 사장 먹여살리려고 일하는 것 아니다. 둘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 의해서 자신의 생존과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다. 서로가 가족같은 관계라는 말 속에서 두루뭉술 일하지말고, 일에서만큼은 좀더 냉정하고 치밀해보자. 정말 가족같은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와 배려, 그리고 희생이란 말을 되새겨야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상황에서 '가족' 이란 말을 함부로 '회사' 앞에다 붙이지 마라. '가족'은 그렇게 함부로 붙일 가벼운 말이 아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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