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精神科) 의사(醫師)는 그의 세 번째 직업이다.

첫 번째 직업은 모 유통회사의 관리 부서에 근무하는 회사원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영업에 관심이 생겼다. 영업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는 발령(發令)을 내주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두었다.

두 번째 직업은 세일즈맨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영업을 할 수 있었기에 재미가 있었다. 의욕이 생겨 해외에서 근무(勤務)를 하고 싶어 신청을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자신은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현실과 이상은 늘 차이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직업에 대한 회의(懷疑)가 들었다. 결국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의과대학 진학에 도전을 하였다.

 

40대 중반의 나이다.

오행의 명국(命局)이 불안하다. 인생판 곳곳에서 보여주는 인연(因緣)의 자리는 마치 6.25때 폭파된 사진 속 한강다리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사주는 차(車),포(包) 없는 장기판에서 장기를 두는 것처럼 인생살이에서도 일단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를 접어두고 시작해야만 한다.

수미복배(首尾腹背)로 이어지는 불안전한 관(官)의 모습은 직업(職業)의 자리가 불안함을 말해준다. 자신의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황폐화된 삶의 터를 새롭게 개척(開拓)하고 개간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

神은 우리에게 저마다의 달란트를 주었다고 했는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인생 판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먹거리는 좋은 문괘(門卦)를 타고난 머리뿐이었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뿌리가 약한 삶의 보호막 자리는 물속에 떠 있는 간들간들한 촛불같은 자신을 보호해 주기에는 너무나 미약(微弱)하다. 결국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러한 보호막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30대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결국 척박한 삶의 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요구하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오히려 이러한 관의 불안함을 완벽하게 잠재운다. 더 이상의 직업에 대한 고민은 없다. 세 번의 직업을 바꾸어 가면서 왜 그토록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밝혀지는 셈이다.

세상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특히 이렇게 불안한 명국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작 자신은 잘되라고 알려주는 선배의 조언(助言)에 스스로 귀를 막는다. 쓸데없이 높은 자존감 자리가 내 잘난 맛에 사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은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한 특히 의사라는 직업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직업의 자리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경제적 풍요로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무색해져버린 요즘의 의사라는 직업은 이미 돈 벌기 위한 영순위의 직업이다. 고생 고생해서 그 어렵다는 의사 공부를 하여 남부럽지 않는 의사가 되었건만.
부(富)의 척도를 상징하는 재물(財物)자리는 그 흔한 개똥도 쓸려면 없다는 말처럼 저 멀리 변지에서 커다란 포탄자국만 선명하다. 당연히 재(財)의 또 다른 동거인(同居人)인 부부(夫婦)간의 불화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재의 자리가 이러하니 개업의(開業醫)로서의 욕심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의사라는 직업에서 건명(乾命)자가 선택한 정신과(精神科)라는 전공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야(分野)이다.

다만 치료를 받는 환자입장에서 아쉬운 점은 일반적인 삶을 살기에 힘든 사람들의 정신(精神)을 치유해 주기에는 의사(醫師)라는 사주의 격(格)이 너무나 편협(偏狹)하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정신과는 환자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는 소통(蔬通)과 교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팔자(八字)에 부족한 재(財)를 마음껏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상술(商術)이 아닌 환자의 마음을 만져주는 인술(仁術)을 베풀면 된다.
동양철학의 비문(秘文)인 기문둔갑(奇門遁甲)을 연구하고 있으며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 : 우리아이의 인생그릇은 타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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