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조언을 누군가 해주면 늘 고마웠다. 근데 요즘은 조언을 해 주어도 어떤 때는 고마운데 어떤 때는 아니다. 나이 탓 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직업상 학생들에게도 가끔 조언을 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또한 때로는 학생들이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좋은 말로 듣는다. 어떤 상황이든 난 진심을 갖고 하는 말인데 말이다. 생각보다 조언을 받고 조언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인데 이 책은 국가가 만들어지면서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공동체는 만인간의 투쟁으로 떨어질 것을 예견하면서 개인과 국가의 권력에 관해서 쓴 책이다.

 

이 책에 조언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우선 조언과 명령은, 말하는 방식은 같은데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명령은 명령하는 자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조언은 조언의 상대에게 생길 이익 때문에 " 이것을 하라 " 또는 "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로 정의된다고 한다. 그리고 명령에는 복종의 의무가 따르지만 조언은 복종의 의무가 없다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내용을 본 순간 그래서 나는 조언이 고마울 때도 고맙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서 마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또 적절한 조언자에 대해서도 정의를 하는데 조언자는 조언자의 목적이나 이익이 조언을 받는 자의 목적이나 이익과 상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언받는 사람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경솔하고 증거가 불확실한 추론이나, 불명료하거나 혼란스럽거나 모호한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또한 그 문제에 대해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깊이 있게 성찰하고 검토해 본 사람으로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조언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선 학생들과 나는 함께 열심히 해 보자는 공통의 목표는 같으니까 우선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적절한 표현, 학생들이 고민하는 만큼보다 더 많은 고민과 지식의 습득 그리고 판단력 등 다면적인 측면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문제는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언을 받는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조언을 해야 한다는 것 ,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법륜스님도 <힐링캠프>에서 조언과 간섭에 대해서 “ 내 말 안들어서 괴로우면 내가 간섭하는 거야 , 들으면 좋고 안들어도 그만 , 의견 내는 거니까“ 이건 조언이다라고 하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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