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와 메르스, 그 우울한 상관관계

입력 2015-06-18 17:28 수정 2015-06-19 09:22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사진)은 좀비가 돼 서로 잡아먹는 가족, 좀비의 공격에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핵가족 제도와 소비 지상주의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좀비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지요. 위안도, 확신도 없는 현대 사회의 불안감을 반영한 최초의 공포 영화로서 지배적 사회 규범에 저항하는 메시지와 함께 매카시즘, 인종주의에 대한 야유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조니와 바브라 남매는 부친의 묘소가 있는 시골을 찾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좀비의 습격에 조니가 죽고 바브라는 간신히 외딴 집으로 도망칩니다. 좀비들의 습격이 계속되자 바브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집 안 지하에 고립됩니다. 마을 전체가 지옥으로 변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의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됩니다.

로메로 감독은 시리즈 2탄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9)에서 좀비들을 야외의 쇼핑몰에 등장시켜 좀비와 자본주의 문화의 섬뜩한 관계를 탐색합니다. 좀비에 점령된 쇼핑몰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에서는 물욕에 인간성을 저당잡힌 현대인의 초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1985년 공개된 '시체들의 낮'(Day of the Dead)은 좁은 지하에 숨은 위기의 인간들이 협력은 커녕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신냉전 시대를 신랄하게 비꼬았지요.

영화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좀비들은 점점 진화하여 급기야 집단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기적인 탐욕에 집착할 뿐입니다. 2009년에 발표된 '서바이벌 오브 데드'(Survival of the Dead)에서 인간은 좀비보다 훨씬 역겨운 악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마침내 좀비는 휴머니즘을 잃어가는 인간을 응징하는 존재로까지 부각되는데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 사태가 이들 좀비 영화의 실사판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수십 명을 감염시킨 일명 '슈퍼 전파자'가 등장한 가운데 자고나면 늘어난 확진자와 사망자, 그리고 수천 명의 격리자…. '낙타 고기' 소리 같은 예방대책이 잉태한 불신과 쉬쉬하던 소문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불안이 공포로 자리잡은 지 제법 된 오늘 첫 부부 사망자까지 발생했습니다.

지극히 '좀비스런' 환자도 나타났습니다. 141번 환자로 알려진 40대 남성의 돌출 행동은 그야말로 '인간성 상실'입니다.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던 이 환자는 보건소 측에서 구급차를 보내주겠다고 하는데도 택시를 타고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병원에서는 "만약 내가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릴 것"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는 검사 결과도 기다리지 않은 채 걸쇠를 부수고 진료소를 벗어나 택시로 귀가했다가 결국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울한 은유 같은 좀비, 그리고 메르스. 퇴치할 방도는 진정 없는 걸까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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