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예향의 고장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통영사람은 아니지만 통영에 재미난 이야기를 또 하나 만들어주고 간 시인이 있다. 1930년대의 시인으로 백석이라는 시인이다.


1935년 6월 절친했던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백석은 이화고녀 졸업반 학생이던 통영 여자 '란'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


<수선화>라는 수필에서 그녀와 사랑에 빠진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되어 젊디 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 앓아 죽고 그는 아름다움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섣달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이 낡은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같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해 유월이 저물게 실비 오는 무더운 밤에 처음으로 그를 안 나는 여러 아름다운 것에 그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1936년 허준과 함께 졸업을 하고 통영으로 내려와 있었던 란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려간다. 지금도 서울에서 통영으로 가는데 4시간이 조금 더 걸리니 그 당시로서는 정말 멀었을 그 곳을, 사랑의 힘으로 내려가지 않았나 싶다.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 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백석 < 통영 >



백석은 <통영>이란 제목의 시를 세 편 남겼는데 그 중 한 작품이다. 통영에선 처녀는 천희라고 했다고 하는데 "객주 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고 하는데 그 때의 사건을 시로 만든 것이리라.


마침 란의 어머니도 졸업까지 한 딸을 결혼시킬 생각을 하고 있어서 서울에 사는 오빠 서상호에게 백석에 대해 알아봐 줄 것을 청한다. 서상호는 아끼는 후배이고 백석의 친구이기도 한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묻는다. 신현중은 백석이 조선일보에 다니다가 지금은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선생으로 교편으로 잡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매우 똑똑하고 사람이 좋으나 그의 모친이 기생출신이라는 해서는 안될 말까지 전해준다. 그 바람에 혼사는 깨어진다.


그리고 신현중은 서상호에게 자신이 란과 혼인할 뜻이 있음을 밝힌다. 신현중은 조선일보 사회부내에서도 명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애국지사로 소문이 나있던 사람으로 단번에 승낙을 받는다. 그리고 신현중과 란은 그로부터 4개월 후 혼인을 한다. 백석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 앞에 우정 또한 없다. 백석은 친구도 사랑하던 여인도 모두 잃은 것이다.


통영, 거기에 가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하나쯤 생기지 않을까!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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