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4월 15일 파리에 위치한 영국대사관에서는 흥미로운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신랑은 이제 갓 하원의원이 된 25세의 영국 청년 랜돌프 처칠. 상대는 뉴욕 최고 미인으로 꼽히던 다섯 살 연하 제시 제롬이었습니다. 사실 이 결혼식은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야심의 합작품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미국 유수의 갑부 부인인 처녀의 어머니는 처음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다가 곧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알고보니 청년이 제7대 처칠 공작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처녀 어머니는 영국 명문가와의 혈연 관계 구축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청년 집안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처칠 가문은 처녀의 아버지가 악명 높은 주식 투기꾼 출신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마침 돈이 무척 궁하던 상황이라 신부가 지참금 5만 파운드를 가져오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당대의 화제를 모은 이 결혼식은 새로운 풍속도를 낳았습니다. 돈 많은 미국 부자의 딸들이 명예롭고 고귀한 혈통의 유럽 귀족 가문에 시집가는 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비꼬는 '달러 공주'라는 말도 생겨났지요.

결혼한 '원조 달러 공주' 제시는 타고난 미모를 무기로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았습니다. 그녀의 내조는 37세의 남편을 하원의장 겸 재무장관에 오르게 했습니다. 남자들과의 염문도 숱하게 뿌렸습니다. 애인 명단에 국왕 에드워드 7세까지 올릴 정도였지요. 45세의 남편 랜돌프가 병으로 죽자 이번엔 스무 살 연하의 근위대 대위와 재혼하는가 하면 63세에는 40세 남편을 두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첫 남편 랜돌프의 첫째아들을 임신 7달 반 만에 낳았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왜소한 체격에 온갖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혀가 짧아 말을 더듬었으며 학교 성적은 늘 낙제였습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의욕도 없고 자기 물건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요. 생전의 아버지로부터 항상 "가문의 수치"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청년으로 성장한 이 아이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육사에 입학하면서 하루 2시간의 체력 훈련으로 신체 허약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하루 5시간의 독서로 학문에 대한 열등감을 벗어나려 했습니다. 혀 짧음과 무대 공포증은 끊임 없는 웅변 연습으로 탈출했습니다. 소심한 성격을 이기기 위해 가장 치열한 전투에 자진 참전했지요.

그리고 만용이 아닌 용기, 정치 철학이 아닌 문제의 해결, 비겁한 길이 아닌 정도, 지루함이 아닌 흥미, 책상이 아닌 현장의 리더십을 중시하는 정치인이 됐습니다. 2002년 BBC가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인'에서 뉴턴과 세익스피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영웅, 바로 윈스턴 처칠(1874~1965)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생명과 세계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요? 나이 든 사람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활기차고 열정적인 젊은이들과 재미있는 놀이에 빠진 어린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저리고, 하느님께서 인류를 버리신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사는 세대가 동료애를 가지며, 정의와 자유를 존중하고, 평화롭고 의기양양하게 나아간다면 밝은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절대로 도망하지 말고, 절대로 싫증내지 말고, 절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015년 4월 16일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만약 처칠이었다면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의 명연설을 곱씹으며 '수장된 진실'이 이제라도 밝혀지기를 희망해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사진: 걸스데이 민아 인스타그램>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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