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배밭을 기억하세요 !

입력 2015-03-30 19:02 수정 2015-03-31 15:59




봄이 되면 자꾸 세상이 술렁거려 냄새도 넌출처럼 번져가는 것이었다


똥장군을 진 아버지가 건너가던 배꽃 고운 길이 자꾸 보이는 것이었다


땅에 묻힌 커다란 항아리에다 식구들은 봄나무의 꽃 봉우리처럼 몸을 열어 똥을 쏟아낸 것인데


아버지는 봄볕이 붐비는 오후 무렵 예의 그 기다란 냄새의 넌출을 끌고 봄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곤 하얀 배밭 언덕 호박자리에 그 냄새를 부어 호박넌출을 키우는 것이었다


봄이 되면 세상이 술렁거려 나는 아직도 봄은 배꽃 고운 들길을 가던 기다란 냄새의 넌출 같기만 한 것이었다


 (문태준, 배꽃 고운 길, 맨발, 창비 , 2009.)



어릴 때 잠깐 공릉동에서 살았다. 아직 개발 전이라 공릉동에서는 조금만 가도 논과 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육사 가는 길에서 봄이면 자전거를 배우러 가던 기억이 있다. 차가 거의 안 다녔고 길가에 가로수들이 쭉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한 편의 영화같은 풍경인데, 그 당시에는 자전거에 소질이 없어서 고생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시의 풍경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태릉에서 조금만 가면 배 밭이 정말 많았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기에 나도 또한 풍경으로만 기억하고 냄새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는 구체적으로 냄새나는 똥장군을 지고 하얗고 향기로운 배꽃이 핀 길을 걸어 밭으로 가서 호박을 기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봄날 농가의 정경을 아름답게 옮겨놓고 있는 시이다.


이 시를 보면 가족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넌출이라는 단어는 식물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들은 넌출처럼 연결되고 다시 그것이 아버지의 노동으로 연결되어 호박꽃을 피우듯 자식들은 커가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 세상이 술렁거리고 또 다른 봄이 와도 시인은 그 배 밭에서 아버지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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