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인 아들이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우리 부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아무래도 영재일 것 같다는 서툰 기대감에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가르치는 것에 비해 그다지 천재성이(?) 발휘되지 않아 적잖이 실망하였지요. 그런데 재미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살이나 어린 딸아이가 배우지도 않은 한글을 줄줄 읽는 것이 아닙니까? 알고 보니 오빠가 공부하는 것이 샘이 나서 어깨너머로 익힌 것이 오빠를 능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 먼저 앞장서 가면 뒤를 따르는 것은 훨씬 쉬운가 봅니다.

 

 좋은 예를 하나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예전부터 서양인들에게 인기 있는 달리기 경기는 1마일 즉 1609m 달리기였습니다. 그런데 반세기 전만 해도 모두들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폐와 심장이 파열되고, 관절이 손상되고, 근육, 인대, 그리고 힘줄이 찢어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 대학 의대생이었던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가 수년간의 노력 끝에 1954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3분 59초4’라는 기록으로 그 벽을 돌파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로저 배니스터가 4분 벽을 깨고 난 후 다른 선수들도 불가능하다고 믿던 4분 벽을 돌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록갱신 한 달 만에 무려 10명의 선수들이 4 분 벽을 돌파했고, 1년 후에는 37명이 돌파했으며, 그리고 2년 후에는 그 숫자가 3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요즘 국제경기에서는 출전 선수 중 4분 이내로 달리지 못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습니다. 막상 이루고 나면 다음 사람은 그만큼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됩니다. 앞서간 사람을 보고 따라만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설(野雪)이라는 한시에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고 하였지요. 먼저간 자들이 가져야 할 책임감입니다.

 

 기업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할 때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홍보를 참 많이 합니다. "여러분 저희가 잘했죠?”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도해보니 효과가 좋더군요. 다른 기업들도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입니다. 
 

 어설프게 사진이나 찍고 자랑하는 사회공헌 홍보는 이제 그만합시다. 기업이 우리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이를 다른 기업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홍보를 해봅시다. 사회공헌 <성과>가 아니라 <방식과 모델>을 홍보해보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뒤따라오는 다른 기업들이 적은 시행착오로 쉽게 배울 수 있게 되어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홍보라면 더 많이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 잘났소!”가 아니라 “이렇게 해봅시다!”라는 멋진 외침이 될 테니 말입니다.


ⓒ김도영 20130720 (dykim99@nate.com)

 

 

<참고>

야설(野雪)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穿雪野中去 (천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 (금조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이양연(李亮淵·1771~1853)
 

조선 정조와 순조 때를 살다 간 시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의 작품이다. 김구(金九) 선생의 애송시로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다.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 있지도 않다. 이양연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어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짧은 시에 촌철살인의 시상(詩想)을 멋지게 펼쳐내고, 따뜻한 인간미와 깊은 사유를 잘 담아내는 이양연의 전형적인 시풍(詩風)을 보여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기업 사회공헌 전문가이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국내 1호 "사회적 샐러리맨" 칼럼니스트
SK에서 사회공헌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하고 있고, 기업 사회공헌담당자 370여명이 모인 CSR포럼 대표이기도 하다. 국회사회공헌포럼 전문위원, 행자부 자원봉사진흥실무위원, 국민연금공단 사회적책임경영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업 사회공헌 지침서인 "김대리 오늘부터 사회공헌팀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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