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사회적 의료보장제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의술을 자랑하고 있다. 어디나 집 앞에 동네병원이 있고 아이들 간식비용보다 저렴하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욱이 저소득층 의료보호대상자는 무상의료, 희귀병 등 차상위계층은 의료비의 대폭 절감 혜택을 받는다. 요즈음은 선진국의 환자들도 자국에서 진료를 받은 후 우리나라에 와서 second opinion을 구하고 다시 진료를 받는다. 또한, 의료관광객이 크게 증가하여 2012년 기준 15만 7000명에 달하고 있다. 의료관광은 연계산업으로서 호텔관광산업, 요식업, 문화산업, 쇼핑업계, 외국투자유치 등을 활성화시켜서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를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의료의 낙원인 것은 외국에 나가 보면 안다. 미국은 영리병원제도를 운영하여 의료비가 매우 비싸고(평균 우리나라의 10배 이상), 그 결과 고소득층을 제외하고는 병원 문턱이 높아서 가기 어렵다. 저소득층 대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의료보험제도가 있으나 막상 병원에서 차별대우하여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 한다. 유럽은 시장사회주의 체제하에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으나, 의사들이 공무원 신분으로서 특별히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고 상대적으로 과다한 의료수요로 인하여 아무리 급한 환자도 진료를 받으려면 예약 후 수주에서 수개월, 수술의 경우 1년 이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부자 환자를 위한 영리병원제도는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나 진료비용이 매우 비싸다. 따라서 미국이던 유럽이던 돈 없으면 아무리 아파도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아니면 죽음을 기다리며 집에 누워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러한 무상의료와 사회안전망 유지를 위하여 우리나라의 몇 배에 달하는 세금과 의료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허용(장례식장, 주차장, 식당, 의료기기 제조 등)과 원격진료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의료계와의 갈등이 극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은 의료민영화나 영리화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의료계·시민사회계측은 의료민영화가 맞다고 반박한다. 사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열심히 추진해온 것으로서 의료계의 결사적인 반대로 벽에 부딪히자, 2012년 10월말 하위법령인 보건복지부령으로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 허용 규칙''을 공포하며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법령작업을 속전속결로 마무리 했다.




영리병원이란 쉽게 투자개방형의료법인(영리의료법인)으로서 투자자가 병원수익을 싹쓸이해 가는 영리목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이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를 받는 서민들이 맞이해야할 것은 의료비 상승과 부자위주 진료이다. 돈 없이 병원 가면 찬밥신세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만 허용되므로 수익을 내면 안 되고 수익금은 모두 병원에 재투자하여야 하고 따라서 저렴한 진료비용과 의료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삼성의료원이나 현대의 서울아산병원 모두 비영리법인인데 다들 잘 하고 있다.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등 정부가 강행하는 일련의 정책들은 보건의료분야의 진입장벽 완화라는 큰 목표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영리병원 허용은 재벌과 슈퍼부자들이 의료사업의 수익금을 쉽게 가져 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는 것으로서 국민건강을 부자들에게 팔아먹는 것이다('주식회사 병원', 이익을 볼 사람과 손해를 볼 사람. 프레시안. 2011-11-30. 박길홍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는 투자개방형의료법인이라는 용어대신 어려운 병원 경영여건의 개선을 위하여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해 주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의료계는 주차장, 장례식장, 식당 등을 운영하기 보다는 환자의 진료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다. 의료계가 환자 진료에 집중하고 싶다는데 정부가 굳이 주차장, 장례식장 등을 운영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모양새가 거꾸로 됐다. 의료계가 진료 외적인 사업으로 돈벌이하도록 허용해 달라고 하여도 정부가 만류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정상적인 정책적 태도가 아닐까?




이런 가운데 현재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허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한국개발원(KDI) 원장이던 시절 발표된 보고서 한 편이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영리병원·원격의료 등 의료서비스 규제완화에 대한 현 부총리의 기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1월 공개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제도개선과제'(윤희숙·고영선)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는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산업의 환경 변화와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특징, 의료서비스 시장 규제 및 규제개선의 방향 등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의료행위를 수행할 권한은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되, 의료업으로 수익을 얻을 권한은 일반국민에게도 허용해야 한다"로 집약된다. 우선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관련해, 보고서는 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 등 서구 대부분 국가에서 이미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 개설주체 중 영리법인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경우"라고 주장했다.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의료인·의료법인뿐만 아니라 민간 자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서비스를 철저히 자본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보고서는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누구이든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이 의료인이기만 하면 국민보건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될 경우 병원이 영리추구를 최대의 목표로 삼게 됨에 따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필수 의료서비스를 외면하거나 저소득계층 환자에 대한 진료기피 현상이 발생해 결국 의료의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료계와 시민사회계의 우려, 특히 영리법인병원의 과도한 이윤논리로 인해 의료인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사의 전문가적 윤리를 믿어야 한다'는 매우 독특한 논리를 펴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구조 하에서 환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료인이라면, 투자자가 소유한 기관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부문이 기반하는 도덕적 기준은 의사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의사집단의 전문가윤리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라면서 "영리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의학적 도덕률이 기관의 이윤을 위해 내버려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의사그룹의 전문가적 윤리가 튼튼하다면 그가 투자자에게 고용될 경우에도 크게 우려할 만한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의협신문 이석영 기자  2014.01.22).




즉 기관(병원)이 아무리 과도한 이익추구에 나서더라도 의사 개개인이 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의사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 해고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자의 요구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사실 2008년 미국 발 Subprime mortgage에 의한 세계경제위기에서 AIG, Lehman Brothers Holdings Inc. 등 세계최대 금융그룹들이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였다가 큰 손실을 입으며 파산하였는데, 이 경우도 CEO의 판단 잘못이라기보다는 투자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손실이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서 원격진료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간 원격진료만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수년간 원격진료 및 서비스 중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의료법일부개정법률안 제34조)을 추진하여 왔다. 이것은 의료인-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여 online 진단, 처방, 처방약 택배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원격의료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첨단 전자기기를 활용해 대국민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편의를 높이는 한편 관련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격진료란 언제 어디서나 센서, 자동진단 알고리즘, 인공지능 및 유무선 네트워킹을 활용한 유비쿼터스 ICT 기술을 통해 제공되는 건강관리 및 의료서비스이다. 이 기술이 더욱 진화하면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기계가 전신을 스캔하여 자동으로 그날의 건강·질병 관리지침을 알려주고 치료하게 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원격진료의 기술 수준은 간단한 1차 진료만 가능하다. 따라서 2·3차 의료기관에 의료인-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1차 개원의들이 진료해야 할 질환을 진료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된다. 중증 질환에 대한 2·3차 진료가 의료인-환자 간 원격진료로 가능해지는 것은 과학과 주변기술이 더욱 발달한 먼 훗날의 일이다. 또한 원격진료가 일부 유명병원에서 시행되면 의료시장이 왜곡되어 큰 혼란이 생긴다. 즉 원격진료가 대한민국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자기 병원 환자 pool을 확보하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지금도 KTX 개통 이후 지방의 환자들이 서울의 유명병원에 몰리고 있는데 이러한 쏠림현상이 크게 심화될 것이다.




도서벽지 등의 주민에게 원격의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해주고 싶다는 정부의 주장은 현행 컴퓨터·화상통신 등을 활용한 의료인간 원격진료 제도로 가능하다. 또한 복지부는 "현재 무의촌(의사가 없는 지역)은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읍·면·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의사(공중보건의 3000여명 포함)가 없는 곳은 50개 면 정도에 불과하고 이곳들은 큰 도시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의사가 없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50개면 정도에 정부에서 원격진료 시스템을 설치해 주면 되지 굳이 의료접근성을 이유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원격진료를 반드시 허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동네의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어서 집 앞에 나오면 병원이 있을 정도로 의료접근성이 매우 우수하다.




더욱이 원격진료 기기의 표준형(혈압, 혈당, 체지방, 콜레스테롤 측정용)이 약 300만원부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는 현재 고혈압 환자의 1달 진료비(약값 포함)가 약 15,000원인데 이 환자의 약 20년간 진료비에 해당한다. 또한 과거 LG CNS의 원격의료 사업 ‘Touch Doctor'의 경우 월회비가 30,000부터 시작하여 고급형으로 갈수록 증가하였다. 따라서 원격진료 기기회사와 원격진료 병원은 돈을 벌겠지만 환자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는가? 의료계의 원격진료에 대한 입장은 지속적으로 연구가 요구되는 미래의학기술이나 아직은 전 국민 대상 의사-환자 원격진료는 기술 수준과 비용 면에서 불필요하고 국민에게 필요 없는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이 현재의 의료의 낙원이 된 것에는 의사들의 희생과 노력이 가장 크다. 그동안 건강보험제도가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원칙 아래 운영되면서 정부가 지나치게 의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였다. 의사들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수가 구조에서 진료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어떻게 하면 비급여를 통해 수가 부족분을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하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집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고 묵묵히 진료에 전념해 왔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들은 의사들을 도둑놈내지는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매일경제는 1월 13일자 사설 -의료계 파업 협상 ‘국민 편익’ 최우선하길-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철밥통을 지키려고 파업에 나섰으나 평균 연봉과 하루 근무시간 등이 속속 밝혀지자 오히려 국민 분노만 초래했다. 노환규 의사협회장은 ”전문의가 평균 연봉 9200만원을 받지만 노동시간, 위험비용 등을 감안하면 적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수가를 일부 조정해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면허 하나로 평생을 보장받으려 하면 국민은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의사협회 측 대화 제의를 환영했는데 의료계와 야합하는 자리여선 안 된다며 전문의가 되기 위하여 11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의사를 이기주의자, 야바위꾼으로 취급하였다.




새누리당은 "의료 영리화 주장은 선동"이라며 의사들을 의료수가 인상을 노린 불순선동분자로 몰아가고 있다. 황우여 대표는 1월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영리화 주장을 '근거없는 괴담'으로 일축하고 "의료 분야는 결코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과 정부의 확고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언어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종범 정책위 부의장은 전화통화에서 "민영화, 영리화 주장은 선동"이라면서 "의료기관의 공공성은 건강보험제도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 항상 보장되고 있다"고 반론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파업의 실제 목표는 의료수가 인상으로 보인다"면서 "당당하게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관련자들과 논의로 풀 문제이지 명분 없는 파업으로 풀어갈 문제는 아니다"고 비판했다("국민건강 담보 집단행동 안돼…파업 실제목표 의료수가 인상인 듯"연합뉴스 2014.01.13 이귀원 기자).



전 의료인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원격의료 도입 관련의료법 개정안(작년 10월 입법예고ㆍ12월 수정) 국무회의 상정 중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등 수정ㆍ철회 ▲저수가 등 건강보험 구조적 문제 논의 등의 요구 사항을 정부와 협상하고 있다. 영리자회사나 원격의료는 현 단계에서는 국민건강을 위하여 불필요하게 비용부담만 가중시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 협상에 진척이 없으면 3월3일 전국 의사 총파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한 선의의 목적이라도 의사 총파업은 국민의 희생이 너무 크다. 한편,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대형병원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병원협회는 의료법인 영리자회사와 원격진료를 적극 찬성한다.




이제 의료계도 국민 건강의 백년대계를 위한 청사진에 대하여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국가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시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행 사회적 의료보장제도가 의사들은 힘들어도 국민을 위하여 가장 이상적이다. 이 제도를 기반으로 의사들의 희생을 감소시키는 보완을 가능한 선에서 추진해 간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의료보장제도를 발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의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세상만사의 진실과 대책을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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