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양적 완화로 개발제한구역 내 사유자산 매입을

 

해방 후 대한민국은 세계의 최빈국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국력을 신장하였다. 근대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경제 성공신화를 이끈 한국적 민주주의의 강력한 리더쉽 하에서 많은 행정이 파시즘적 관행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리더쉽이 국가발전의 토대를 닦았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희생양들이 아무 죄 없이 인권과 재산을 유린당하였다.


대표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이다. 개발제한지역은 그린벨트(greenbelt)라고도 하고, 국립공원은 더욱 엄격하게 개발제한이 적용되고 있는 지역이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은 개발제한구역을 임의로 지정하였으며 이 지역 내 주민들은 묵묵히 수용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제도이나 문제는 지정될 당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의 재산권이 아무 잘못도 없이 완전히 짓밟히고 천민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귀양살이와 다름없는 구차한 삶을 연명하며 자손에까지 가난을 세습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독재적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할 때이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경관을 정비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 설정된 녹지대로, 이 구역 내에서는 건축물의 신축·증축, 용도변경, 토지의 형질변경 및 토지분할 등의 행위가 제한된다. 1971년 도시계획법 제정과 함께 지정된 우리나라의 그린벨트는 현재 전 국토의 5.5%에 달하고, 상주인구만 12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수지역’이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역에는 휴양림 및 수목원, 소규모 생활체육시설, 수목장림, 장사시설 등 일부 시설물을 제외하고는 엄격하게 개발이 차단된다.


국립공원은 한 나라의 자연풍경을 대표하는 경승지를 국가가 법에 의하여 지정하고 이를 유지·관리하는 공원이다. 국립공원은 자연환경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레크리에이션 지역으로서, 또 국제적으로는 나라의 대표적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발제한구역 지정은 꼭 필요하나, 문제는 지정 당시 현장실사, 환경평가, 공청회 등 법에 명시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직직 그어 구역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정신을 가지고 도로가 나 있고 사람 사는 동네를 특히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겠는가?


그 후 이 지역의 주민들은 실질적으로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해 졌다. 원칙적으로는 매매가 가능하나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으므로 특별히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눌러 사는 수밖에 없다. 집의 신·증축, 부동산의 개발이나 영리목적의 운영이 매우 어렵다. 법적으로는 지자체장이나 관련부처 장관의 승인이 있으면 구역설정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의 개발행위는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면서 승인을 안 해준다. 사실 우리나라 정부는 규제는 잘 해도 한번 규제한 것을 푸는 것은 다칠까봐 발뺌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량한 국민이 어느날 갑자기 삶과 인생이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져서 평생 한을 품고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눈부신 발전을 하는 동안 개발제한지역과 국립공원 내 거주민들은 묶이던 때인 60-80년대의 초라하고 낡은 모습 그대로 최하층민으로 살고 있다. 인권과 복지는 개발제한구역 거주민들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인가?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이 사람들은 태어나기를 아주 재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대접이 마땅한 것인가?


아무리 하소연하여도 아무도 관심을 안 갖고 대가나 동정은커녕 암묵적인 합의 하에 환경보존과 국민건강을 위하여 희생하라고 압력만 넣고… 자신이 당할 때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남이 당할 때도 같은 배려를 하는 선진적인 국민의식의 정착이 필요하다.


국민의 이기주의나 무책임하고 비전문적인 원칙주의도 이제는 버려야 한다. 개발제한구역 규제완화 이야기가 나오면 인근 주민들이 ‘우리 산책로를 왜 파괴하느냐’고 플래카드를 내걸고 결사적으로 저지하는 데모를 한다. 그렇다고 사용료 한 푼 내는 것도 아니면서… 각종 환경단체들은 떼 지어 몰려 와서 ‘환경파괴의 주범은 각성하라’고 전문적인 환경조사평가도 없이 상투적인 구호를 부르짖는다. 제한구역 내 주민들은 생존권을 지키려고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있는데 말이다.


없던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앞만 보고 달려와서 부자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선진적인 사회제도와 절차를 확립할 때이다. 여야 모두 복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외계층을 위한다면서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일부 국민의 삶을 강제로 파괴하고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복지의 시작은 과거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시작이다. 개인의 인권과 재산권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해야 한다. 투명한 절차를 통한 정책 추진, 정책적 피해자에게는 대가를 지불하는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개발제한구역 내 사유지의 경우 지정될 때의 상태로 권리 회복을 하던지 국가에서 매입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그 재원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양적 완화로 토지 소유주가 원하면 공시지가로라도 현금으로 매입하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양도세는 면제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수십 년간 짓밟힌 기본 인권에 대한 보상은 전혀 되지 않는다. 공시지가가 개발제한구역 외의 인접지역에 비하여 엄청나게 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직으로 재산권 행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소위 민주주의 선진국가에서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사유지의 경우 국가가 환경보존을 위하여 사용하는데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원화가 주요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서 양적 완화는 인플레와 원화가치 하락의 위험이 크다. 하지만 조절이 가능한 약간의 인플레와 원화 가치 하락은 오히려 경기회복과 가계부채 부담 완화, 수출증대에 도움이 된다.


아베노믹스는 2년 안에 인플레이션 2% 목표에 이르기 위해 본원통화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9%에서 55%로 늘리는 엄청난 통화살포 작전을 하고 있다. 매월 자산 매입으로 GDP 대비 1% 남짓한 돈을 푸는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는 GDP 대비 0.5%를 푸는 미국 연준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홍수로 국내에 급격히 유입된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면 우리는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 ‘헬리콥터 벤’이 퍼부은 돈을 거둬들일 때에 대비해야 한다(매일경제. ‘닌자’ 아베. 장경덕 칼럼. 2013.05.23). 미국, 일본, 유럽에서 양적 완화의 출구전략을 모색할 때 연착륙을 위하여 우리나라도 양적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양적 완화는 급격한 외국 자본 유입을 자제시키고 우리나라 경제의 내수 의존도를 높이는 바람직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여 이제는 물질적 선진국뿐만 아니라 평등과 사회정의에서도 품격 있는 선진국으로 격상하기를 기대한다. 공익을 위하여 희생해온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고 그 윈-윈의 해법으로서 재정·통화정책의 탄력적이고 공격적인 운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의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세상만사의 진실과 대책을 진정성을 가지고 논의하는 글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