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여우난골족

입력 2015-02-23 14:22 수정 2015-02-24 17:06




여우난골족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 ( 新理 ) 고무 고무의 딸 이녀 ( 李女) 작은 이녀


열 여섯에 사십 ( 四十) 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수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 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 ( 承女 ) 아들 승( 承) 동이 육십리( 六十里) 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 洪女) 아들 홍(洪) 동이 작은 홍 ( 洪) 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 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옥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에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 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맜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이 시는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한 백석이라는 시인의 작품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시이다. 명절날에 엄마와 아버지를 따라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사시는 큰집으로 가서 명절을 지내는 모습을 쓴 시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여우난골은 백석의 일가친척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이름이다. 명절날 그곳으로 가면 곰보인 신리 고모,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토산 고모, 해변으로 시집을 가 과부가 된 큰골 고모, 술 주정을 하면 토방 돌을 뽑는 삼촌 등이 있다. 그리고 이녀, 승녀 , 홍녀, 홍등이 등은 평북 지방에서 아이들을 지칭할 때 쓰는 애칭이 붙은 것으로 아버지가 ‘홍가’일 경우 딸은 ‘홍녀’ 아들은 ‘홍동이’라고 부른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명절을 보내는  대가족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그렇게 북적대는식구들 사이에선 이미 우리에겐 잊혀진 설빔들을 챙겨 입고 와서 그 새 옷의 냄새가 나고 그 집에선 음식 냄새들이 풍겨온다.

명절날은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날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사촌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숨박꼭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놀이, 장가가는 놀이를 하고 , 쌈방이라는 평북 지방의 토속적인 풍물을 굴리면서 놀고, 주발 뚜껑을 돌리면서 누가 오래 돌리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호박떼기라는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한 줄로 늘어 앉아서 하는 놀이로 서울에서 하는 꼬리끊기라는 놀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놀이를 한다. 또 제비손이구손이라는 놀이로 여럿이 두 줄로 마주 앉아 서로 다리를 끼고 다리를 세며 부르는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모여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다가 아침이 오면 문틈으로 부엌에서 무이징게국 끊이는 내음새가 올라오지만 아이는 계속 자고 있다. 하지만 잠결에도 엄마를 비롯하여 여자들이 함께 아침 먹을 준비를 하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고, 맛있게 올라오는 냄새를 맡으면서 명절 아침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고향이 서울인 나로서는 고향하면 특정한 장소만을 가리키는 고유대명사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식구들이 모여앉아 무이징게국을 끓이기만 해도 늘 행복한고향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맛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인터넷 포털에 무(무이는 평안도 말로 무를 뜻한다)와 작은 새우를 넣고 끓인 국이라는 블로그 글이 몇 개있었다. 이것으로는 아쉬워서 더 찾아보니 이름 밝히기를 꺼린 43살의 평안도 출신 탈북 여성의 인터뷰를 찾았다. "무와 작은 새우를 넣고 끓인 국이 평안도에 있느냐"란 질문에 그는 평안도 성천, 증산 등 바닷가에서 무와 새우젓갈로 끓인 국이 있으며 무가 나는 가을·겨울에 여전히 많이 먹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 많이 먹었다고 했다. ( 매거진 esc, 2009.12,9.)


식구라는 것이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라고 하는데 식구의 의미와 고향의 추억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맛으로 기억되는 고향, 그래서 그곳은 늘 가고 싶은 곳인지도 모른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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