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 문정희 ‘다시 남자를 위하여’ 일부

문정희의 시를 보며 나는 반성한다. 야성의 남자들은 정말 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우리의 가슴속에 꿈틀대던 야성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야성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남자들은 어떤 것에 자극받고 무엇에 대해 약이 오를까? 돈? 명예? 미녀? 혹은 터프한 매력?

 

 





남자에게 있어서 자동차와 여자는 같다. 마음먹은 대로 드라이빙의 짜릿함을 주는 멋진 차는 멋대로 조종할 수 있는 미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모터쇼에는 예외 없이 미녀들이 등장한다. 자동차보다 미녀들이 카메라세례를 더 받기도 한다. 자동차는 남자에게 있어서 자기과시와 자기만족의 두 가지 모두 의미하는 것이다. 좀 더 빠른 자동차, 좀 더 터프한 자동차, 이를 통해 남자들은 속도와 터프한 세계로의 감정이입을 꿈꾸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터프하게 달리고 싶은 욕구를 랜드로버나 Jeep은 심플한 아이디어로 표현하고 있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경찰을 보면 랜드로버가 안겨주는 야성의 드라이브를 꿈꾸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현실감이 부족한 Jeep 광고보다 랜드로버가 훨씬 더 와 닿는 힘이 있다.

 

 

미녀는 야수의 영원한 꿈이다. 그래서 남자를 위한 광고에 미녀들이 등장하는 것은 가장 단순한 공식이면서 거부할 수 없는 공식이 되었다. 특히 미녀와의 섹스를 꿈꾸는 남자의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는 광고가 많다. 현실에서는 불가능 할지 몰라도 그것을 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남자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흐른다.

투명한 병과 레몬을 넣어 마시는 걸로 유명한 멕시코의 맥주 코로나는 남자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원래는 라임을 넣어 마시지만 우리나라에는 없어 레몬을 넣는다. 시리즈로 된 이 광고를 보라. 더 깊게 으깨어 넣어라는 짧은 카피와 절정에 이른 미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맥주병속으로 레몬을 넣는 행위와 섹스를 연결시킨 단순한 공식이지만 이것을 보는 남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약이 올라서, 그것이 아쉬워서 남자들은 코로나를 더 많이 마실 수도 있는 것이다.

 



똑똑한 남자들이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자신이 똑똑한 남자라는 점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정치와 경제, 음악이나 영화 등의 지식을 드러내어 과시욕을 보상받으려 한다. 그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이다. 정자은행에서 말하기를 “이코노미스트 독자라면 환영합니다.” 이걸 읽는 남자들은 똑똑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작가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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