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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 열풍으로 백 투 더 90s! 다시 보는 90년대 그때 그 사건!

연말, 연시에 방영된 무한도전 ‘토토가’ 열풍의 여진이 아직까지도 상당합니다.

그 시절, 그리고 지금 우리를 울고 웃게 한 90년대 스타들의 모습이 많은 분들의 향수를 자극한 탓이겠죠?

 

1990년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찬란하고 다양한 대중 문화 Pop culture가 꽃 피었고,

2000년대라는 새 천년, ‘밀레니엄’을 앞둔 마지막 10년이기도 한 탓에 혼란스럽기도 했던 시대였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도 이런 1990년대를 조명했던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바로 작년 9월에 방송된 <컴백 1990>입니다. (원제: The 90s: The Decade That Connected Us)

 

컴백 1990!

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컴백 1990>

 

지금도 ‘레전드급’으로 기억되는 Pop의 여왕 마돈나, 요절한 락 스타 너바나, 또 한 명의 요절한 힙합 레전드 투팍

지금까지도 미드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프렌즈’

그리고 90년대에 우리 곁을 떠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1990년대의 ‘강남 스타일’이었던 마카레나 댄스, 이라크 전쟁과 빌 클린턴 그리고 ‘모니카 르윈스키’

‘우리’의 의미가 PC와 인터넷으로 ‘세계’가 되기 시작한 90년대, 넷스케이프와 윈도우95, 최초의 아이맥 그리고 모두를 공포와 혼란에 빠트렸던 ‘밀레니엄 버그(Y2K)’ 대소동까지!

 

‘토토가’로만 한정하기에는 아까운 1990년대의 그 사람, 그 사건들이 이제 생각나시나요? 🙂

 

여러분의 기억력을 자극할, 혹은 여러분이 몰랐을 지도 모르는 90년대의 그때 그 사람, 그 사건!

<컴백 1990> 속 영상과 사진으로 준비해봤습니다.

 

– 90년대, 빌 게이츠도 예측하지 못한 인터넷의 시대!

 

90년대는 인터넷의 시대였습니다. 전기가 발명된 이래로 전구나 라디오, TV의 발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1991년 전까지는 연구나 사업 외에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세상이 열릴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죠. 빌 게이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1995년 8월 빌 게이츠는 ‘윈도우95’로 세상을 제패했습니다. 모든 집에 컴퓨터를 두게 하자는 빌 게이츠의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개발한 윈도우 95는 이전보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러나 윈도우 95엔 웹 브라우저가 없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웹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웹이 사회주의 같다고 말했죠.

그러나 넷스케이프사는 웹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뒤늦게 빌 게이츠는 방어에 돌입하여 넷스케이프에 대항해 인터넷 프로그램을 내놓습니다. 결국 90년대 말엔 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우저 시장의 80%를 차지하게 됩니다.

 

 

– 90년대의 ‘강남 스타일’ 마카레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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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컴백 1990>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리듬과 춤으로 전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데요, 중독성 강하고 독특한 댄스가 곧잘 ‘마카레나’에 비견되곤 했죠.

‘마카레나’는 90년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음악이었습니다. 두 명의 스페인 아저씨로 구성된 ‘로스 델 리오(Los Del Rio)’라는 듀오는 중독성 강한 댄스곡 ’마카레나’를 독특한 춤사위와 곁들여 불러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마카레나’의 원곡은 스페인어로만 된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이애미 라디오의 한 프로듀서는 이 노래의 놀라운 중독성에 반해,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틀고 싶었지만 영어 노래가 아니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방송에 나갈 수 있게 영어로 번안하고, 중독성을 더 높이는 편곡을 거쳐 단 2시간만에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마카레나로 다시 탄생하게 됩니다.

그 뒤는? 모두가 아시는 대로 전세계적인 열풍이었죠.

 


– 1994.4.5 커트 코베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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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컴백 1990>

 

‘코트니 러브와 커트 코베인은 그런지 록의 제왕이며 커트가 속한 밴드 너바나는X세대의 대변자이다’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1991년에 ‘X세대’라는 책에서 쓴 문구입니다.

너바나의 음악은 곧 X세대의 음악이었습니다.

솔직했고 정직하며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들의 음악은 그 당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잘 담았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거나 페미니즘을 인정하는 것 처럼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밝히며 ‘세대의 대변자’로 추앙받았습니다.

너바나는 당시 대세였던 헤비 메탈 대신 ‘펑크’의 부활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인기는 열광적, 세계적이었죠.

 

그러나 너바나가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록, 커트 코베인은 자신을 고립시키기 시작하며 심한 압박감으로 무너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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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컴백 1990>

결국 1994년 4월 5일, 27세의 나이로 자살. 그 것이 90년대를 대표하는 록스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 1997.4.5  ‘민중의 왕세자비(People’s Princess)’ 다이애나 사망

 

왕세자의 사랑을 받은 이혼 가정 출신의 유치원 교사!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됩니다.

바로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았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은 스캔들과 갈등으로 얼룩집니다.

찰스 왕세자는 결혼 당시에도 애인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였고, 다이애나비는 자립심이 강한 여성으로 자신을 액세서리 취급하는 왕세자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이애나는 결국 15년의 결혼생활 끝에 어렵게 왕실로부터 자유를 얻어냅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그레이스 켈리 이후 가장 매력적인 왕실 여성이었고, 이혼 후에도 그녀를 향한 관심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1997년, 그녀에게 미디어와 대중들의 관심은 폭발합니다. 그녀가 재혼할 지도 몰랐기 때문이죠.

그녀가 가는 곳 어디든 파파라치가 따라 붙었고, 그녀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교통 사고로 36살의 생을 마감합니다.

 

 

– 1999, 세기말의 종말론과 밀레니엄 버그 대소동!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인터넷과 컴퓨터가 우리 사회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였죠.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었고, 많은 산업 시스템이 전자화, 자동화 된 시점 입니다.

그런데 1999년에서 2000년대로의 ‘새천년’을 앞두고,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바로 ‘밀레니엄 버그’, 줄여서 Y2K라는 것 때문이었죠.

 

이는 오래전 프로그래머나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컴퓨터나 반도체의 연도를 [99/12/31]처럼 두자리만 인식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인데요, 99/12/31에서 00/01/01로 변경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했습니다. 00을 1900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순간에는 철도, 항공, 선박 등 세계 물류나 교통에 마비가 올 수 있고, 금융, 세무, 행정 등도 모두 엉망이 될 수 있었죠.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세기말의 종말론과 더해져 실제 혼란보다 사람들의 공포심이 더 큰 문제를 야기했고, 세계 종말을 대비하는 ‘프레퍼족’이 크게 대두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미국에서는 위기관리 전문가를 고용해 Y2K로 인한 혼란을 막으려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1월 1일이 왔고, 여러분이 보시는 것 처럼 세상은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

 

여러분이 기억하는 1990년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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