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중국 상인들의 단면들

광고에 능한 광둥(廣東) 상인

광둥 사람은 자기PR을 잘하고 그만큼 광고에서도 앞서간다고 한다. 중국 개방 이후 유명연예인을 가장 먼저 광고에 등장시킨 게 광둥 기업으로 리모란(李默然)이 등장한 위장약이라고 한다. 이후 궁리, 청룽 모두 광둥 기업들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광둥 사람들이 얼마나 광고에 뛰어난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보자.
1994년 말, 중국 광저우의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한 식당에서 지배인을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조건이 독특했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무조건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텔도 아니고 거리의 평범한 식당에서 5개 국어를 지배인의 조건으로 내걸어 광고가 화제가 되었다. 결국 중년의 베트남 여자 화교가 선발이 되었단다. 그녀는 베트남어를 할 줄 알았거, 제 1 외국어인 영어는 물론이고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관계로 프랑스어를 구사했고, 학창 시절에 일본어를 외국어로 공부했고, 중국에 건너와 살며 중국어까지 능숙하게 해서 5개 국어란 조건을 만족시켰다. 광고와 더불어 평범한 식당에서 지배인이 5개 국어로 손님을 맞이한다거, 아니 구사한다는 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중국 전역에 외국어 학습 붐이 일던 때인지라 손님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서 베트남 화교 출신의 지배인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려 애를 썼다. 식당은 구인광고로 하나로 계속 만원사례를 빚었다고 한다.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溫州)와 신용의 저장(浙江) 상인
화성인이 탄 우주선이 중국에 불시착했다. 구경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전역에서 몰려 들었다. 먼저 베이징사람이 물었다. “인류와 혈연관계가 있습니까”.각지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당신들을 전시회에 출품 시켜 표를 팔고 싶은데”(상하이 사람),“당신 몸의 어느 부위를 먹을 수 있나요?” (광둥 사람). “당신들 사는 곳에도 할 만한 사업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불쑥 튀어 나왔다.모두들 돌아보자 원저우 사람이 서 있었다.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원저우 상인. 그들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중국의 우스갯 소리이다.

철물점 대왕(五金大王)’으로 일컬어지는 예청중(葉澄衷)이 성공한 것도 신용 때문이었다.
예청중은 상하이 황푸강에서 나룻배를 저으면서 받은 뱃삯과 손님에게 군것질과 잡화를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년 뱃사공이었다. 어느 날 한 영국상인이 그의 나룻배를 타고 황푸강 동편, 즉 푸둥으로 건너갔는데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그만 돈가방을 배에 놓고 내렸다. 예청중은 배 안에서 가방을 발견하고는 방금 내린 손님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손님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예청중이 가방을 열어보니 수천 달러와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와 어음 등 그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가방 소유자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예청중은 그날 장사를 포기하고 나루터에서 코 크고 눈 푸른 서양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한편 사업자금뿐 아니라 영국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잃어버린 영국상인은 황푸강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힘없이 터덜터덜 나루터로 돌아왔을 때 뱃사공 소년이 자신의 돈가방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방 속의 돈과 물건도 그대로였다. 영국상인은 감격한 나머지 소년의 손을 꼭 잡고 사례금으로 1000달러를 건네주려 했으나 소년은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그 영국상인은 예청중을 상하이 최대의 철물점을 경영할 파트너로 초빙했다. 그 후에도 예청중은 변함없이 고상한 상덕(商德)과 상도(商道)를 발휘해 사람들의 환영과 존경을 받았으며 나아가 ‘철물점 대왕’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의욕은 과잉이나 상업의식은 부족한 허난(河南) 상인

허난(河南) 사람들은 상업의식이 부족하다고 한다. 세계탁구의 여제(女帝)로 1990년대를 호령하던 덩야핑(鄧亞萍)이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었단다. 마치 리닝(李寧)이 젠리바오(健力寶)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스포츠 브랜드를 만든 것과 같이 한 것이다.그런데 허난 사람들은 덩야핑 브랜드에 대해서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브랜드는 약삭빠른 광시 출신의 어느 사업가가 사버려서 책의 표현에 의하면 “허난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을 부풀려줄 ‘황금간판’이 멀리 이민을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허난 사람에게는 발 벗고 나서서 창업을 이루는 기업가의 개척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홍카오량(紅高梁) 콰이찬(快餐)’의 경우는 너무나 무모하게 나서서 실패한 사례이다. 2002년에 발간된 이 책에서는 아주 의욕에 찬 과감한 사례로 소개하였으나, 아래 시사저널 기사에서 보듯 이미 1996년에 실패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맥도널드에 잡아먹힌 ‘양육면’
맥도널드에서 1.5㎞ 안에 다른 패스트푸드점을 차리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이 말은 세계 패스트푸드 업계의 불문율로 통한다. 그런데도 중국의 한 식품 회사가 이 불문율에 도전장을 내고 1년 가까이 맥도널드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남성 정주(鄭州) 시에 본부를 둔 ‘홍카오량(紅高梁) 콰이찬(快餐) 연쇄공사’가 맥도널드에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 2월. 그때만 해도 맥도널드는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왕푸징(王府井)의 북경 제1호점을 필두로 북경 시내에만 분점을 17개나 차려놓고 파죽지세로 중국인들에게 ‘빅맥’과 감자 튀김 맛을 주입하고 있었다.
하남성 본부에서 홍카오량의 ‘북경 전선’에 파견된 도우파이쥔(竇柏軍·두백군)씨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의 새로운 상표를 만들어 서양식 패스트푸드에 도전하겠다고 창립 목적을 밝히면서 “맥도널드 가는 곳엔 어디든지 홍카오량이 간다”라고 선언했다.
홍카오량의 북경 제1호점이 들어선 자리는 맥도널드에서 1.5㎞ 밖이기는커녕 채 20m도 되지 않는 길 맞은편, 바로 코앞이었다. 엄청난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맥도널드 맞은편 건물 1층에 2백여㎡나 차지하고 앉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에 도전한다는 의사를 분명히한 것이었다.
홍카오량의 주무기는 한 그릇에 10위안(약 천원)짜리 양고기 국수. 양고기 국물로 맛을 낸 탕에 넓적한 국수를 말아 손쉽고 값싸게 먹도록 만들었다. 양육면은 하남성의 전통 음식인데, 95년에 창립된 홍카오량 패스트푸드는 하남성 성도인 정주 시에서만도 무려 5천여 분점이 성업하고 있다.

중국식 패스트푸드, 매장 밖으로 들고나갈 수 없는 것이 약점

북경 1호점이 자리잡고 나서 약 2개월 동안 홍카오량의 ‘북경 상륙 작전’은 먹혀드는 듯 싶었다. 특히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의 점심 시간대에는 매장 좌석이 꽉 찼다. 하지만 맞은편 맥도널드 매장은 점심 시간뿐만 아니라 영업 시간 내내 손님이 들끓었다.
북경 1호점 개설 후 1년 안에 분점을 북경에 12개, 전국에 백 개 세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세 좋게 출발한 홍카오량의 발걸음은 점차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갔다. 홍카오량 매장은 특정 시간대에만 붐비는데 맥도널드는 왜 영업 시간(12시간) 내내 손님이 붐비는가? 맥도널드가 전세계에 1만8천개 이상 분점을 차려놓고 50년 이상 전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을 관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해도, 5천 년 동안 이어온 중국 음식 문화의 전통이 맥도널드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중국인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홍카오량은 ‘중국에서 나고 중국에서 자란(土生 土長)’ 신토불이 제품이 아닌가. 중원땅(하남)의 황톳내 물씬 풍기는 홍카오량이 토마토 케첩이나 얹은 빅맥에 항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홍카오량의 1일 평균 매출액이 1만8천위안(약 1백80만원)밖에 되지 않는데 1일 평균 임대료는 만위안(약 백만원)에 가깝다. 홍카오량에게 은근히 응원을 보내던 여론도 홍카오량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홍카오량, 혹시 아름다운 물거품은 아닌가?’
우선 간식 쟁탈전의 핵심인 상품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햄버거에 콜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국물을 곁들인 양육면을 먹는 것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을 간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맥도널드의 경우 매출 총량의 6분 1이 간편하게 싸가지고 가서 먹는 매장 밖 소비인데 , 국수는 그릇을 들고 매장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홍카오량의 차오잉 사장은 서양식 패스트푸드의 성숙된 매장 경영 방식을 배우고, 시장을 냉정하게 대하며, 수요를 창출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면서 “우리도 맥도널드를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식 패스트푸드가 12억 내수 시장에서 이제 막 한 발을 내디디면서 내린 결론이다. 1회전에 구겨져버린 중국인의 자존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양육면 사업 아이디어를 낸 도우파이린(竇柏林)씨는 이렇게 말한다. “홍카오량과 맥도널드는 누가 누구를 잡아먹는 차원이 아니다. 각기 소비자가 따로 있으며, 서로 다른 파이를 베어 먹을 것이다.”
홍카오량의 앞날 못지 않게 궁금한 것은 맥도널드를 잡아먹겠다고 나설 한국식 패스트푸드가 언제 어떤 형태로 선보일까 하는 것이다.

일거삼득의 영민함을 지닌 홍콩 상인

홍콩의 넥타이 브랜드인 진리라이(金利來)의 쩡쎈짜이(曾憲梓)가 1971년에 이름이 알려지면서 예전에 그를 박대했던 유명 백화점에서 사과를 하면서 100다스를 주문했단다. 쩡셴짜이가 주문을 못 맞추겠다며 거절하자 백화점에서는 당시로서는 드문 현금으로 거래를 하겠다고까지 했다. 쩡셴짜이는 과거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주문량 밀린 것이 많아서 제때에 맞출 수 없어서 신용을 잃을까 두려워서 그런다고 상세히 설명을 했다. 백화점에서는 몸이 달아서 다음 해 주문을 미리 했단다. 유명 백화점의 주문을 거절한 넥타이 회사로 이름이 나며 다른 백화점에서도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당시 쩡셴짜이로서는 약간만 무리를 하면 100다스 주문을 맞출 수 있었는데, 한 템포 쉬어가며 신용도 지키고 기업광고 효과까지 거둔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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