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복의 이유있는 浮上

입력 2014-09-12 13:56 수정 2014-09-12 13:56



얼마전 광장시장의 어느 맞춤복집을 찾았다. 긴 세월 기성복에 길들여져 옷을 맞추어 입는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 낡은 다림질용 테이블, 재단대, 그리고 손때 묻어 반잘반질한 미싱이 놓여 있다. 미싱 위 벽면에는 여러 종류의 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벽면에는 각종 옷감이, 천정에 매달린 행거엔  하얀 실로 듬성듬성 시침되어 가봉된 반제품이 내걸려 있다. 꼭 필요한 것만 갖춘 단촐한 맞춤복집이다.
광장시장에는 옷감을 파는 상점들과 함께 고만고만한 맞춤복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다.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의 테일러가 반갑게 맞았다.
막 배달되어온 듯한 점심 밥상에 다시 신문지를 덮어 한 켠으로 물리길래, “천천히 식사부터 하세요. 그 사이 시장 한바퀴 둘러보고 오겠습니다”하고 막 돌아서는데, 다시 온다는 말을 못 믿겠다 싶었던지 대뜸 박카스 뚜껑을 따 마시길 권했다.

“오늘 첫 손님인데...한번 문지방을 넘어온 손님은 절대 안 놓칩니다.”
환하게 웃음 지으며 발목을 붙잡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은발 노신사의 주름진 얼굴에는 기성복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버텨온 맞춤복 외길인생의 이력이 훈장처럼 묻어났다.
“수트를 맞춰 입어 보려구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옷감을 골라 보라며 두툼한 스와치 북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는 눈금이 다 지워진 줄자를 목에 걸고 신체사이즈를 기록할 주문서를 챙겨 숙련된 솜씨로 채촌을 하면서 한편으로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맞춤 옷 전성시대였던 7~80년대에는 손님이 많았지요. 그런데 요즘엔 맞춰 입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 80년대 후반들어 기성복의 범람으로 맞춤복은 외면받기 시작했지요. 기성복이 맞춤옷을 완전히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머잖아 맞춤옷 전성시대가 다시 올 것이란 한가닥 희망으로 삽니다.”

마음에 드는 원단을 골라 상의는 쓰리버튼으로, 허리라인은 슬림하게, 총장은 약간 길게, 뒤트임은 양쪽으로, 하의는 주름 하나로, 바지통은 좁은듯 하게 주문했다.
생애 첫 맞춤복은 당연히 교복이었다. 1970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읍내에 나가 무슨무슨 羅紗(라사)라 간판붙은 양복점에서 첫 교복을 맞춰 입었다.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시기라, 당시 부모님들은 몸집보다 품을 훨씬 넉넉하게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저학년들은 너나없이 소매나 바짓단을 한두 번 접어 입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몸이 불어 교복이 작아지면 어김없이 재봉선을 튿어 여유분을 내어 품을 늘려 입혔다. 그렇게 한 벌로 3년을 버텼다.
고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교복과 교련복에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기억에  벨트고리는 넓게, 바지주머니는 수평 타입(Western pocket)으로, 바지통은 10.5인치로 주문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른바 나팔바지 맞춤이 대세였던 시절이 지나고 1984년,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수트를 두어번 맞춰 입었고, 이후 결혼 예복을 끝으로 맞춤복과는 결별했다.



맞춤복이라 하면 보통 정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광장시장 맞춤복 구역에 가면 드레스셔츠나 블라우스, 바지 등 원하는 아이템을 취향대로 맞춰 입을 수 있다. 기성복만큼이나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해 자신의 개성을 한껏  살릴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광장시장은 패턴, 재단, 봉제 등 맞춤옷의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는 ‘광장패션스쿨’까지 개설해 운영 중이다. 곧 광장시장 맞춤 의류브랜드도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개성과 취향이 톡톡 튀는 시대다.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는, 지금의 다양한 사회에서 ‘맞춤복’의 부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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