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대일' 해외서 극찬, "당신은 누구인가" 묻다

입력 2014-09-11 13:57 수정 2014-12-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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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대일'포스터[/caption]

김기덕 감독이 국제 영화제에서 또 '사고'를 쳤습니다. 그의 작품 '일대일'이 지난 6일 막을 내린 제7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베니스 데이즈'에서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이로써 김 감독은 2012년의 '피에타'(황금사자상), 13년의 '뫼비우스'(비경쟁 부문 초청)에 이어 올해 '일대일'로 3년 연속 베니스를 방문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2004년에는 '빈집'으로 감독상을 받은 바 있지요.

'베니스 데이즈'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기간 중 이탈리아 영화 감독 협회와 제작가 협회의 주관으로 열리는 영화제로 칸 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에 해당됩니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권력의 부정 부패와 싸우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민주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사건과 이를 파헤치다 외롭게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아픔을 전 세계인이 공유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의미 있는 수상 소감을 남겼습니다.

'일대일'은 한 여고생이 참혹하게 살해되자 일곱 명의 시민이 살인을 사주한 자들을 단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그 경계는 어디쯤이며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자문하게 만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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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caption]

사회 구조적인 폭력의 본질에 대해 연구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1975)는 "악은 대단히 평범한 구조에서 발생한다. 태어날 때부터 결함이 있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악은 이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내면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아렌트는 2차대전 때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 역할을 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이러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을 추출해냈습니다. 1961년 재판 당시 아이히만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다지요.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비록 근면하고 능력 있는 인간이지만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끔찍한 범죄는 바로 생각의 무능성에서 기인했다"고 판정했지요.

"'생각 없는' 개인이 나태해지면 사회가 해체되고 국가가 무제한의 강압 장치로 전환한다. 이후 관료주의 체제가 대중을 확고하게 지배하게 되고 급기야는 이 평범한 개인들이 악의 행렬에 가담하게 된다"는 게 아렌트 이론의 핵심입니다.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는 영화 속 살인자도 원래부터 특별한 악인이었던 게 아니라 자각 없이 살다보니 그 길로 들어선 평범한 인간이었던 게지요.

지난 5월 '일대일' 개봉 직후 네이버 영화 리뷰 란에 게재된 한 블로거의 글을 소개합니다. 깨어 있는 눈으로 영화의 핵심을 찔렀습니다.

(전략)

김기덕의 영화는 지금까지 세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딸을 잃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임에도 선악 구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분명 그 이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일대일이라는 영화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며 그 안에도 각각 7명이 있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총 14개의 선택안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두 집단은 돈과 권력에 의해 강자와 약자로 구분된 집단이며, 이해관계가 얽혀있습니다.
이 안에서 나를 구분해 내는 일은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자 안에서도 약자의 편에 든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약자 안에서도 강자 쪽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적어도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나 당연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상당히 도발적일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국가의 제도, 사회의 도덕. 종교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당연한 인간의 도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법과 도덕, 윤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선 우리는 강자의 편에 서길 원합니다.
막대한 권력을 가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예는 수없이도 많습니다.
국가의 제도. 사회의 도덕. 종교 윤리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이 사슬에 따라 강자의 영광은 약자의 희생에서 비롯되듯 말입니다.
그렇기에 김기덕 또한 이분법으로 쉽게 나눌 수 없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겠죠.

영화에서 그려진 강자에 맞서는 약자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계속 돈과 권력에 기대어 있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들은 결말 부분에 가서 서로 분열되며, 그나마 몇 안되게 남은 이들 또한 갈팡질팡하다 결국 최후를 맞게 됩니다.
처음에는 순수했을지 모르는 그들의 결과를 보며, 한편으로 강자보다 더한 악이 아닐까도 생각이 들게 합니다.
또, 이들과 비슷한 모습은 강자에 속한 이들 중에도 몇몇이 있습니다.
이들을 악으로 만든 건 무엇일까요.

제 생각으론 무지입니다. 결국에 무지 때문에 악이 된 셈이죠.
무지가 악이 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합니다.
악한 행동 뒤에는 항상 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우리는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나쁜 사람이죠.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엄청난 살인과 학살의 만행이 저질러진 사건의 경우엔 그들은 어떤 의도로 이를 행했을까요?
많은 부분 악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잘못된 선을 추구한 사람들의 무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 쉬워 보이지, 사실상 엄청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본인들은 선이라 생각하지만 결국에 무지였다면 말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권력에 속한 이들 중 몇몇의 약자들은 대사에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확신 곧 무지가 표현되기도 합니다.

말이 길었네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김기덕 영화의 그 전과는 다릅니다.
칼을 쥐고도 항상 스스로의 살을 후벼 팠다면, 일대일에선 날카로운 칼을 쥐고 상대를 향해 있습니다.
영화의 제작 기간을 고려하면 내년에 개봉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김기덕 감독임을 고려해도 여름은 넘어야 개봉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다듬지 않고 날 것으로 내놓은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무엇 때문인지는 관객들이 판단할 몫으로 보입니다.

'강자와 약자 사이, 나는 누구인가?'

-작성자 키키(블로그 http://blog.naver.com/andloveu/220007898522)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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