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일출 사진여행

의유당의 동명일기가 순간 생각이 났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이 아니라 렌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장엄함과 빛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복받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의유당은 육안으로 일출을 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해의 모습을 묘사를 했지만, 만일 그녀가 그날 600mm 렌즈로 일출을 봤다면 더 섬세하고 감동적인 문장이 나오지 않았을까.

 

 바다 수면에서 해가 올라오는 모습

 바다 수면에서 해가 올라오는 모습

 

해는 매일 뜬다. 그러나 15년 전의 그 일출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일출은 그 전에도 몇 번 시도 해봤지만, 늘 실패하여 별 기대감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사보 편집을 하고 있는 시기여서 1월1일 떠오르는 새해를 사보를 통해 회사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동행자는, 렌즈에만 천여 만원을 투자한 분과 몇 명 더.

 

일출 촬영의 스케줄은 이랬다.

잠실에서 12월 31일 밤 10시에 집합하여 출발한다. 약간의 교통체증과 함께 달리다 보면 1월1일이 되는 밤 12시 정각이 되면 (강촌휴게소 부근) 잠시 차를 세우고 라디오의 볼륨을 최대한 올려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준비해간 샴페인을 터뜨린다. 덕담 한 마디씩 하고 동해로 계속 밟아 간다. 어느 고개로 넘어가던 간에 태백산맥을 넘을 땐 정체를 피할 수 없다. 새해 첫날 새벽이기에 더욱 그렇다.

 

동해안에 도착하면 새벽 5~6시 정도. 장소물색을 하고 자리잡고 해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웬만한 동해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새해 소망도 빌 겸해서 오는 것이다. 날씨 춥고 바람 불 것을 대비하여 위스키를 준비한다.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먼동이 튼다. 별이 초롱초롱 떠있고 하늘이 맑아도 해가 수면에서 뜨라는 보장은 없다. 수평선에서 가장 밝게 붉은 아우라를 보이는 지역이 해 뜨는 포인트다. 삼각대 펴고 핀트도 맞춰 보고 여명의 풍경도 여기저기 찍어본다. 하늘은 이제 제법 밝은 푸른 빛이 되어 있다.

 

07시 40분.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 짧지만 가느다란 빛이 보인다. 그 빛은 금세 아름다운 눈썹 모양으로 변하는 듯하더니 다시 진홍빛 럭비공 모양으로 바뀐다. 이어 해는 수면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밑둥을 바다에 붙이고 마치 철모 같은 형상을 이룬다. 여기서부터 해는 외곽선을 흐물거리며 세상을 모두 태워버릴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일출의 절정인 오메가! 바다에서 똑 떨어져 오르기 직전의 모습은 마치 오메가를 연상케 한다. 밑에서부터 위로 오르는 적색과 주황색, 노랑에 이르는 그래디에이션, 그리고 하늘과 바다의 원시적 조화…

수면에 얼굴을 보이고 이탈하는 데까지 과정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바다에서 똑 떨어지면 해는 점점 작아지면서 노란 빛으로 변하고, 중천으로 올라가면서 ‘날 더 이상 찍지마’라는 듯이 백색광으로 변화하면서 자외선을 쏴댄다.

바다 수면에서 떠오르는 해를 처음 보기도 했으나 훌륭한 망원렌즈로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사실 우리는 벌써 이런 장면을 애국가 연주할 때 극장에서건 TV에서건 보아오긴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촬영해본다는 것은…… 산삼을 사진으로 구경한 것과 직접 산에서 찾아낸 것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일출의 클라이막스

 일출의 클라이막스

 

 

일출 사진여행

1일 동해 해안선은 온통 ‘손에 손잡고’ 수준이다.

 

그런데… 중간에 렌즈를 바꾸는 과정에 조리개링이 돌아간 걸 모르고 있었다. 해가 수면을 떠나누렇게 변했을 때 그 때서야 노출계를 보게 된 것이다. 노출부족으로 찍힌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맨 윗 사진) ‘하수같이 긴장을 하다니…’ 일출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 너무 서둘렀던 탓이었다. 그날 대포항에서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술을 때려 마셨다.

 

그 이후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가까운 지인들이나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과 위의 일정대로 해서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갔다. 무박 2일 일정이 연휴를 만나면 1박 3일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사보 신년호에는 그 해 첫날 찍은 사진을 올리곤 했다.

 

사보와 상관 없이 일출여행은 10년 지속되었다. 그동안 수면에서 떠오르는 해는 한 번 정도 보긴 했으나, 품질이나 감동은 좀 떨어졌다. 그 외에는 구름이나 운무 사이에서 삐죽이 내밀거나 아예 안 뜨는 날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했고, 오랜 만에 공기 좋은 데서 술 한 잔 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너무 일찍 도착(새벽 2시)을 해서 횟집에서 밤새며 술 마시다가 자는 바람에 일출을 못 찍은 적도 있었다.

 

이럴 때도 있었다. 눈이 갑자기 쏟아져 체인을 채우고 진부령을 넘는데, 꼭대기에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니 반대쪽은 눈이 안 온 것이다. 시간은 너무 지체되어 하늘은 훤해오고.. 그래서 체인을 채운 채로 꼬불길을 60km의 속도로 밟고 내려와 가까스로 촬영은 했으나 뽑은 지 한달 밖에 안됐던 엑셀은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공장에 입고되어 수리를 받았다. 그때 현대에서 엄청나게 겁을 먹었다고… 한 달밖에 안된 차가 10년 된 차처럼 덜덜거렸으니 말이다.

 

이렇든 저렇든 일출사진도 좋지만, 새해에 한 번 동해에서 마음을 정화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여행 목적의 중심이 사진에서 술 쪽으로 이동해갔다. 그래서 10년을 채우고 행사를 중단했다. 최근 몇 년 못 가다가 올해 한 번 큰 맘 먹고 재도전했으나, 더욱 심해진 교통난과 현장의 인파를 확인하곤 이젠 일출을 찍더라도 신년 새해 때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일출 사진여행

 올해 일출 모습– 코빼기만 살짝 보여줬다가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술 마시고 불렀던 노래 하나가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