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병의 추억들(2)

입력 2014-09-01 15:56 수정 2015-03-12 10:29
쫄병 영창 간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자가 영창 갈 뻔한 기억이 난다. 제대를 2개월 정도 남겨놓은 병장 말년 때였다. 내가 근무했던 곳도 겨울엔 몹시 추워서 영하 20도는 족히 내려가는 동네였다. 그날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몹시 추운 날씨였던 걸로 기억된다.

사령부에 국방부장관이 온다는 것이었다. 공식방문을 하게 되면 군사령관(대장)을 위시해서 예하 사단장, 여단장도 모두 집합을 하게 된다. 도착 예정시간 훨씬 전부터 사령부 앞에서 일렬로 서서(도열) 기다렸다가 도착하면 악수 한번씩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장군들이 관등성명 외치는 것 들어보셨는지…

사진반은 이런 귀빈이 오게 되면 사진 1명, 영사 1명, 비디오 1명, 이렇게 3명이 사령부엘 가게 된다. 그날도 비서실에 먼저 올라가서 우선 일정표 확인을 했다. 군사령관이 헬기편으로 온다음 국방부장관이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직 군사령관도 오지 않은 상태고 시간도 좀 남아 있어서 현관 안쪽 화장실 라디에이터에 쫄다구들과 같이 대기하고 있었다. 카메라, 특히 비디오카메라는 추위에 오래 노출되어 있으면 작동이 안될 때도 있고, 손이 얼면 손가락에 감각도 떨어지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 도열한 사람들과 같이 떨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일 큰 이유는 ‘군기가 빠져서’이다. ^^;

마침내 헬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음. 이제 군사령관이 도착하는 모양이군.”라고 생각하고, 2~3분 지난 후에 화장실에서 나와 현관 쪽으로 슬슬 나가려는데, 도열했던 사람들이 모조리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끄트머리에 따라 올라가던 비서실장이 나를 보더니 사색이 되어 말했다.

“너… 왜 안 찍었어?”

나도 사색이 되어 물었다. “군사령관님 도착하신 것 아닙니까?”

알고 보니 국방부장관이 아침에 군사령부를 들러서 같은 헬기를 타고 온 것이었다. ‘쪼인트’ 한방 일단 채이고… “악수 장면은 가실 때 찍으면 됩니다”라고 했지만, 비디오는 어쩌란 말인가… 나가는 장면을 찍고 거꾸로 돌릴까 하는 한심한 생각까지 했다. ‘말년에 X됐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영창감인데…

나머지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비서실로 다시 올라갔더니 주임상사를 비롯한 비서실장 주위에 있는 인사들이 내가 말년이니 봐주자는 분위기였다. 십년감수한 순간이었다.

잔머리 아무 때나 돌리면 큰일 당할 수 있다. 몸이 좀 괴로워도 정석대로 해야 한다는 교훈.

 

 


근무기간 중 비디오카메라가 보급되어 배우면서 찍느라, 밤새며 편집하랴 고생했다


 

여기서 군대사진 팁!

AF가 안되던 시절, 도열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 주빈과 도열한 사람의 악수시간은 1.5초에서 2초 사이. 이 중에서도 손을 맞잡고 시선을 마주보고 있는 시간은 0.5초도 안된다. 손을 잡는 순간 다음 사람으로 시선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핀트까지 맞추면서 순간을 잡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핀트는 건드리지 않고 주빈과 나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셔터를 누른다. 물론 두 눈을 다 떠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파인더 외에 일어나는 상황도 체크해야 하고 한 쪽 눈을 오래 감고 있으면 눈에 경련이 온다.

추운 장소에서 따뜻한 곳으로 옮기면 렌즈에 수증기가 끼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뽀사시’(foggy)효과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뿌옇게 보여 핀트를 맞출 수도 없을 정도의 끔찍한 상황에 몰린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난방 라디에이터 같은 데 렌즈를 대고 말리면 되지만 도열 끝나고 바로 공식 행사로 들어갈 때는 난감하다. 특히 오랜 시간 추운 곳에 있다가 들어오면 김을 없애도 또 생기고 또 생기고 한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김 제거용 프레온가스를 가방에 항상 넣어 다녔다. 렌즈에 칙 뿌리면 찍빵으로 없어진다. 요즘에는 사용을 안 하겠지만… 대체용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귀빈 이야기가 또 나왔으니… 군대에서 최고의 귀빈은 역시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내가 군대 있는 동안 대통령이 두 번이나 우리 부대를 찾았다. 첫번째 공식 방문 때는 쫄따구라 구경도 못했고, 두번째 비공식 방문 때 대통령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 “땡전”대통령 말이다.

첫번째 방문에는 고참이 찍었는데, 사령부 현관 기념촬영한 사진의 별 숫자를 세어 보니 50개 정도다. 사람수는 30명이 채 안되었었는데(군단 참모 대령급 6~7명 포함) 말이다. 별볼일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은하수’였다.

그 때 생각으로, ‘지금은 50개지만, 약 3년여 전이면 여기에 있는 장군들 별 숫자를 다 합쳐도 10개 남짓 밖에 안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의 첫 방문 시기는 83년도 봄. 당시 참모총장은 정호용, 군사령관은 박희도 장군이었다.

 

병장시절 ‘전통’의 두번째 방문 이야기다.


사령부로부터 “언제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 달 내 일요일 새벽에 대통령이 불시에 방문할 것”이라는 첩보?예고?를 들었다. 내무반에서 사령부까지는 같은 영내이긴 해도 1km에 가까운 거리였다. 축석 검문소에서 통과했다는 연락이 오면 자다가 출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토요일만 되면 사진병들은 군복을 입은 채로, 군화도 신고 자게 됐다. 마침 당직 사령실에서 “사진반 비상!” 발령이 떨어져서 쫓아 올라 가보면, 당직사령이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이었다. “음, 시간을 좀 단축해봐..”

그 다음 주부터는 아예 내무반 앞에 지프차를 대기시켰다. 또 올라 가볼라치면 “많이 좋아졌군. 수고했어” 뭐 이런 식으로 3주가 지나고 4주차 때 진짜 ‘그분’이 오셨다. 새벽부터 인근 부대까지 빨래 다 걷고 소총의 공이도 다 빼고 난리를 쳤다.

대통령 도착 전 비서실에 대기하고 있는데, 먼저 온 경호원들이 들이닥치더니 전화선을 뽑는 것도 아니고 다 잘라버린다. 뻘쭘하게 서있는 우릴 보고는 카메라를 빼앗아서 몇 컷 눌러보고 비디오카메라도 전원을 넣어 돌려본다. 카메라에서 총알이라도 나갈까봐 그런 모양이다. 창 밖을 보니 뒷산에 경호원 머리들이 들쑥날쑥 했다.

도열 준비를 마친(사진병만 비상훈련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 현관에서 기다리니 똑같이 생긴 세단이 3~4대 들어온다. 방송카메라도 따라왔다. ‘땡전 뉴스’용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9시 ‘땡’하자마자 우리부대 방문 소식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 뉴스(시보 포함)녹화해서 그날 우리가 찍은 거와 같이 편집해서 당시 참석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더니 입이 귀에 걸렸다.

‘ 그날은 비공식 방문이라 외부 인사(은하수)들은 오지 못했다. 장교 식당에서 아침을 같이 먹으며 ‘전통’이 일장 훈시를 구수하게(사투리 심함) 하고 있는데, 박희도 장군이 헬기로 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뭐 하러 와… 그냥 돌아가라구 해..” 해서 박장군은 공중에서 유턴해서 돌아갔다.

수행원 중 한 명은, 83년도에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군단장이 보고하고 있는 장면)을 크게 뽑아서 사령부에 걸어놨는데, 그분의 측후방면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부실한 머리가 부각) 당장 내리라고 하기도 했다. 기본이 안됐느니…하면서. 그게 기본일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다녀간 그 다음날부터 공병여단과 민간 공동으로 43번 국도(의정부에서 부대 앞을 지나가는 도로)의 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날 새벽에 43번 국도를 타고 오던 ‘전통’이

“이 도로가 지방도로인가?” 해서

“아닙니다 국도입니다”했더니

“국도가 왜 2차선(왕복)밖에 안되는고?” 해서 공사를 다음날 바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라도 넓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별 혜택을 못 봤지만.

 

 


 할일 없을 땐 고장 난 카메라를 가지고 놀곤했다


 

어째 내용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군대 이야기 하면 밤샌다는 말이 맞다. 말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축구 이야기가 아니니 좀 낫지 않은가?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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