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펄~!”, “탄~!”
이 소리가 뭔 소린가 하면, 군바리들이 경례구호 외치는 소리다.
1음절에 지나치게 강한 액센트를 넣기 때문에 저런 소리가 난다.
‘충성’, ‘필승’, ‘단결’이라는 구호들이 저렇게 들린다.
군대에서 필자는 군단 사진병으로 근무했다.
중부전선 웬만한 부대는 다 돌아본 것 같은데,
지방도로를 지프차로 다니다 부대 앞을 지나게 되면 위병소에서 저런 식의 다양한 구호를 듣게 된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의 구호는 “?!”이었다.
말년이 되면 데시벨이 뚝 떨어지면서 “짹”으로 바뀌게 된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구호가 ‘책임’이라니…

 

사진반의 주요고객은 작전과 장교들이다.
지형사진을 찍으러 갈 때도 많지만, 타 부대에 뭔가 잘 됐다는 소릴 들으면 사진병을 대동하여 찾아가 보는 것이다.
사령부 작전과(벙커)엘 가보면, 대위들이 빗자루 들고 청소를 한다.
병들의 숫자가 적다 보니 병에게는 타이핑 시키고 직접 청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교들이 오지 부대에 가면 어깨 힘 들어간다.
반면 육군본부에 가면 방위들이 시뻘건 별판을 보고도 건성으로 경례를 한다.
여기는 영관급도 청소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군의 날을 앞두면 육본은 각 사단, 군단에서 사진병을 1명씩 차출하는데, 그 때 차출되어 육본에 약 1주일 파견 간 적이 있었다.
임무는 초청된 외국 참모총장들을 한 명씩 수행하면서 사진을 찍고 출국할 때 앨범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여의도 행사나 시가행진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맡은 사람은 대만 육군 참모총장. 그런데 이분이 최고귀빈 대우를 받았다.
호텔에서 행사를 위해 출발할 때면 항상 20여명의 참모총장 중 제일 먼저 출발했다.
아이러니다. 지금은 대만이 중국에 밀려 명동의 대사관저마저 빼앗기지 않았는가…
낮에 사진 찍고 밤에 사진 뽑아서 출국일 무사히 앨범을 전달할 수 있었는데, 필름을 마음 놓고 쓴 것은 이 때가 유일했다.

 


국군의 날 파견 -- 그 당시엔 폼 난다고 생각했다.(양복도 빌린 것)


 

자대에서는 필름 사용내역을 일일이 기록했다.

예를 들어 군단장에게 손님이 예방차 왔을 때 필름을 4컷 이상 쓰면 선임하사에게 한 소리 듣곤 했다.

필름이 몇 컷 안 남았더라도 앞에 찍은 사진을 급하게 뽑아야 할 일이 있으면, 남은 필름을 활용하기 위해 항상 앞부분만 잘라 현상했다.

군대도 당시 보급 필름이 흑백에서 칼라로 넘어가는 시점이어서 흑백 필름은 썩어나는데, 칼라필름은 보급량이 적었기 때문에 아껴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군바리 월급이 3,000~4,000원인데 필름 값은 한 통에 1,000원 정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군대에서 사진 찍기 제일 좋아하는 군바리는?

헌병이다. 키도 훤칠하지만 복장에서 일단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반에서 그리 거리도 멀지 않은 헌병대에서 기념촬영 요청이 많이 들어 온다.

이렇게 얼굴을 익혀둔 덕분에 외출 외박 때 ‘점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헌병대에는 이런 일 말고 수사과에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이 때는 좀 긴장이 된다. 보통 사고사한 시체 찍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찍느라고 정신 없어 별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암실에서 사진을 뽑을 때 오바이트가 쏠린다.

현상액에 인화지를 넣으면 핏자국부터 서서히 올라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뻘건 조명 밑에서… 첫 시체 촬영 후에는 보통 1~2끼는 굶게 된다.

 

가끔 영창에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이 경우는 영창에서 남한산성으로 이감되는 수감자 증명사진을 찍을 때다.

영창 내부 벽에 세워놓고 찍게 되는데, 필름 절약 차원에서 3명씩 찍어서 얼굴만 오려내 쓴다.

첫 촬영 때였다. 벽에 세 명을 세우니 양쪽 두 명 은 당연히 카메라가 아닌 자신의 정면을 보고 있게 된다.

그래서 양쪽 두 명에게 카메라를 좀 보라고 했더니 지켜보던 헌병들이 비호 같이 날아서 수감자들을 걷어찬다. 서 있는 거 하나 못한다구…

그 다음부터는 다른 델 쳐다 보고 있어도 그냥 찍었다.

‘사실 늬들 얼굴 잘 나와서 뭐하겠냐’는 생각에..

 

영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쫄다구 중에 사진 잘못 찍어서 영창간 경우가 있었다.

사진 경력이 달려서 주로 사무실을 지키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직속상관인 통신대장(대령)이 급한 사진이라며 사무실에 혼자 있던 그 친구를 데려갔다.

경험도 문제였지만 사진장비도 시원찮은 거밖에 남아 있질 않았던 상태였다.

 

필자가 촬영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그 친구가 사진을 막 뽑아서(45분 칼라) 들어왔다.

사진을 보니 도통 무슨 사진인지 알 수가 없다. 지형정찰 사진인데, 그 친구의 설명과 사진이 영 맞질 않는 거다.

행사 사진도 아니니 다시 찍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다니까 일단 대장실에 갖다 주고 저녁에 비벼먹을 고추장(PX에서 파는 무지 매운) 내기 사다리를 타고 있었다.

그 때 중대에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를 중대장이 찾는다고…

그 친구는 그 길로 돌아오질 않았다.

그 친구가 고추장을 사야 되는데…

 

알아보니 헌병대 차가 중대에 와서 바로 영창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날 찍은 사진은 다음날 군단장에게 통신센터를 구축하는 보고에 사용할 사진이었던 것이다.

대장이 사진을 보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다 잘 나올 거라 하더니… 이 자식 당장 영창 보냇!”

 

다음날 영창엘 찾아가봤더니 혈색도 좋아 보인다.

군단 사진병이고 죄목(?)이 불량하지 않아서 대우를 잘해줬다 한다.

15일 영창생활을 마치고 오히려 헌병대와 가장 친한 사진병이 되었다.

이후 통신대장의 표창을 받음으로 해서 영창 기록은 삭제되었다.

대장이 나중에 생각해보니 영창보낸 건 좀 심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시 사진이야기.

지형사진을 찍을 때는 500MD라는 잠자리 모양의 헬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항공촬영을 할 때는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촬영을 위해 활주로에 나가니 내가 탈 헬기의 문짝을 떼내고 있었다.

앞에 두 명(조종사) 뒤에 두 명 타는 헬기인데 사진찍기 편하게 하기 위해 문짝을 떼내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몸을 옆으로 조금만 빼면 바로 바깥이다.

조종사와 대화는 소음 때문에 헤드셋을 통해서 한다. 헬기는 20~30미터까지 뜬 후, 뜬 상태에서 방향을 잡고(이 때 제일 무섭다) 활주로 위를 타고 가다가 상승한다.

 
조종 장교 말로, ‘1초에 500원씩 떨어뜨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항공기 연료가 비싸다.

그 때도 표준렌즈 딸랑 하나밖에 없어 넓은 지역을 찍을 때는 한 없이 올라가야 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간 적도 많다.

한 번 뜨는 비용이면 광각렌즈 하나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말년에 항공촬영할 때 조종장교가 물었다.

“ 최병장, 헬기 타다가 오버이트 해봤나?”

“….아뇨.”

대답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찰라 헬기가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

상승 하강을 몇 번 하지 않았는데 울컥했다…. 앞에서는 재밌다고 킥킥대고…

기억들이 이것 저것 꿈틀거리며 기어올라 글을 끊어 가야겠다.

To be continued…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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