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지나간 여름은 참으로 덥고 길었습니다.


이제 산들은 홀로 우뚝 서서 빈 하늘 공간을 우러러보고, 강물은 들녘의 바람 노래를 들으면서 바다로 흐르고 있습니다.

호수는 어제 잠긴 달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솔가지는 낮에 앉은 새의 진동을 기억하지 못하며, 가을바람은 지난여름의 장미 향기를 놓아두고 가볍게 장벽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제 답답한 싸움을 멈추고 자기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시원한 평온을 찾게 해주시고, 우리들의 심장이 사랑으로 뛰게 하소서! 시원한 가을 하늘을 연출하기 전에 뜨거운 햇살을 더 보내어 마지막 곡식을 영글게 하시고, 청명한 가을 기운으로 세파에 찌든 우리들이 웃음을 짓게 하소서!

 

신이시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은 험한 듯 아름답습니다.


하늘 붓은 무거웠던 여름 하늘을 지우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그리고, 우리들은 마음의 붓으로 하늘가에 동그라미 소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수는 잔물결로 수면을 흔들고, 잔가지는 줄기를 흔들면서 손짓을 하고, 내 몸에 살면서 아직 내가 아닌 자아는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연약한 코스모스는 하늘거리면서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는 몸짓의 노래를 하고, 귀뚜라미 우는 적막한 밤에 붉은 맨드라미는 우국열사의 마지막 용맹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복잡한 세상을 ‘놓고 기다려라’는 한 줄 시어로 위로해주시고, 제멋대로 성장한 미움들이 '참나'에 녹아버리게 해주시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우국혼들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부활하게 하소서!

 

신이시여! 머지않아 하늘 앞을 막았던 먹구름은 물러가겠지요.


시원하고 상큼한 바람은 덥고 습기 찬 공간을 뽀송하게 보듬어주고, 조각난 먹구름을 헤치고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열리겠지요.

가을 분수는 높이 올랐다 떨어지더라도 땀을 흘리지 않고, 가을 대추는 여름날의 상처를 보듬고 고운 빛을 내겠지요. 무지와 증오를 먹고 자란 붉고 검은 여름 곰팡이들을 모두 거두어 가시고, 여름의 격한 뜨거움이 시원한 바람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의 고통을 이기게 하소서! 흐린 별빛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둠을 이겨가게 하시고, 피고 진 꽃들이 열매를 맺도록 마지막 아픔을 참고 기다리게 하소서! 쓰러진 풀과 나무들은 다시 일어나 생명의 가을 축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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