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일본 힐링 트레킹...제6신, '이와미긴잔(石見銀鑛)' 옛길을 걷다.



비로소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긴노미치(銀の道)라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겨울임에도 숲 속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청청한 대나무숲이 하늘을 찌를 듯 빼곡하여 어스름 새벽녘 같다.
 

이따끔 흩뿌리는 빗줄기에 잔설이 녹아내려 산길은 질퍽거렸다.
군데군데 눈무게에 꺾여진 대나무가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대나무가 참 많다. 그래서인가, 일본에는 죽세공예품도 많고
일본 요리 중에도 죽순요리가 많은가 보다.
 

대나무 뿌리는 땅을 파지 못할 정도로 얼키설키 옆으로 넓게 퍼진다.
그래서 지진이 나면 사람들이 대나무숲으르 피신하기도 한다.
땅이 흔들려도 대나무숲은 안전할 것이라 믿고 있단다. 
 

산길은 완만했다. 산속으로 들수록 杉나무와 대나무 숲이 압권이다.
짙은 피톤치드 향이 온 몸을 감싸 안는 느낌이다.
조금 전 아스팔트 길에 지쳐 투정부리던 일행들 표정도 환해졌다.
이처럼 숲은 품이 넓다. 포용력 역시 무한대다.
 
그 옛날, 은을 나르던 광부들의 고단함이 배여 있는 ‘銀の道’다.
그 길을, 지금 ‘힐링’이라는 미명 하에 호사를 부리고 있다.
 

마을을 지날 때나 산길을 걷다 보면 쉽게 묘를 맞닥뜨리게 된다.
봉분이 없고 비석과 돌멩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본의 묘는 우리나라처럼 개별 매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절이나 공원묘지에 만들어진 가족 묘에 함께 납골되는 게 일반적이란다. 
 

다시 산길을 벗어나 아스팥트길로 내려섰다.
시골 마을 풍경이 고즈넉하다.
마을 뒤로 희끗한 산봉이 비안개에 갇혀 있다.
버스는 산구비로 돌아 마을회관 마당에 먼저 와 있다.
마을회관에 일행들을 위한 점심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옛길을 걷다보면 오가는 현지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열에 아홉은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오하이오고자이마스”
여성 분들은 짧고 귀엽게 ‘오하이요’라며 미소 짓는다.
남성 분들은 더러 ‘오쓰으’라고도 줄여 힘차게 인사하기도 했다.
일본 말 인사에 우리 말로 화답한다.
“안녕하세요”
 
걷는 여행이 좋은 이유는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믿고 살 수도 있고
채취한 수산물을 착한 가격에 맛 볼 수도 있다.
거대 기업들이 생산하여 유통하는 상품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먹고 소비해주는 것이야말로 걷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호텔에서만 묵는게 아니라 현지인 집을 이용하는 민숙(民宿)도 좋다.
이처럼 그 지역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 바로 ‘공정여행’이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직접 마을회관으로 가지고 나와, 손수 나눠 주었다.
일행을 위해 마을회관 강당도 기꺼이 내어 주었다.
 
여기서부터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을 걸어 올라 은광마을로 가야 하나
숲길이 망가져 아쉽게도 버스를 이용해 산을 돌아 넘어
은광마을 지구, 초입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류겐지 마부(갱도)까지는 3.1km거리다.
류겐지 마부에서 되돌아 나와야 하니 6km 남짓 걸어야 한다.
800m까지는 옛 마을 길, 이후부터는 산자락 길이다.
천천히 걸으며 좌우 고택들을 눈에 담는다.
돈이 넘쳐났던 곳 답게 일반적 가옥보다 규모가 크다. 
 

세계자연유산 지역으로 지정되면 함부로 집을 보수할 수 없다.
보존가치 측면에서 우리나라 한옥도 보존 지정되면 내 집이지만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고칠 수 없는 것처럼 이곳도 허가받아 지침대로 수리해야 한다.
 
어제 걸었던 ‘귀신의 혀떨림 계곡’이 힐링 트레킹 코스였다면
이곳 ‘이와미긴잔’은 스토리텔링 길이라 규정하고 싶다.
갱도에 들어가 은을 채취해 산을 넘어 항구까지 날라야만 했던
고단한 광부들의 일상과 배를 이용해 교토로, 도쿄로 실어 나르며
차곡차곡 부를 쌓아간 부호들의 모습이 교차되기에 그렇다.
 

에도시대의 무사나 은광 거부들의 저택, 은행, 여관, 우체국, 절, 제련소,
망루 등 건축물이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은광 마을은 은광 지역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중심지였다.  
 

은광마을 지구를 지나 실제로 은을 생산했던 은광지구로 들어섰다.
마을을 벗어나자, 고택은 드문드문 보이면서 울창한 숲길로 이어졌다.
산자락 곳곳에 마부(갱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부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협소했다.
600여개가 넘는 마부(갱도)의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당시
번성했던 은광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은광지구 끝자락에 위치한 류겐지(용원사) 마부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유일하게 개방해 놓았다.
 
‘이와미긴잔’은 1526년 은광이 발견된 이래 약 400년에 걸쳐 채굴된 광산 유적이다.
최 전성기에는 세계 은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2007년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구역은 은 광산을 비롯해 은 수송에 사용된 광도, 마을, 온천가 등이다.
당시 이곳을 차지하려던 세력들의 다툼도 빈번하였다.
1562년 모리 가문과 도요토미히데요시 가문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의 군자금이 여기서 충당되었다고 한다.
은세공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신라인들이 이와미긴잔으로 오기도 했다.
지금도 신라인들을 모셔둔 신라 신사가 있어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류겐지(용원사) 마부에서 유턴하여 이와미긴잔 공원으로 내려왔다.
찔끔거리는 빗발이라 우의를 챙겨 입지 않았더니
몰골은 영락없이 비맞은 생쥐꼴이다.
 
‘이와미긴잔’ 길을 다 걷고 나니 오후 3시다.
버스는 시마네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돗토리현으로 넘어왔다.
사카이미나토항 방면으로 향하던 버스는 일정엔 없던
‘과자의 성’이란 곳에 잠시 멈춰섰다.
 

돗토리현의 특산품인 모찌와 가마모꼬(오뎅) 등 갖가지 먹을거리를 시식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쑤시개 하나만 챙기면 스무가지 가까이를 공짜로 맛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귀띔에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먹을거리를 즐겼다.
 
일본 전통 모찌는 우리 고유의 떡과는 좀 틀려 달달한 편이다.
모찌 먹다가 달달하면 반찬 파는 곳으로 가서 단무지를 시식하고 나면
입안이 한결 개운해진다나… 공짜 시식을 즐기는 노하우라 했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8:30분 사카이미나토항을 출발했다.
다음날 아침 도착한 동해항은 폭설에 갇혀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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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겨울은 가고 봄이 왔습니다.
지리하게 이어온 일본 트레킹 이야기도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6편에 이르는 찌질한 이야기에 많이 불편하셨지요? 죄송합니다^^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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