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무릉계곡의 여름  동양화와 수채화가 어우러지다

 
 무릉이 어드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옛 시조의 한 구절이 저절로 나오는 곳.
이곳은 이름도 무릉도원과 같은 무릉계곡이다.
 
몇 년 전 겨울에 한 번 와보고 두 번째 찾는 것이지만,
여름의 이곳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계곡 입구에는 바위들이 모여 계곡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큰 너럭바위 한 덩어리가 계곡을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 그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무릉반석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옛 명필들의 글귀도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자연훼손이라고 보일 수도 있으나 서체가 힘 있고 멋이 있어 봐주기로 했다.
또 안 봐준다 한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제 이 글씨들은 무릉계곡의 일부가 된 듯하다.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바위에 남은 물흐른 자국은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싯구를 새겨 놓은 것은 좀 나은데. 이름 석자만 새겨놓은 것에 대해선 화가 좀 났다  
 옥빛을 띈 계곡물은 군데군데 패인 곳에서 머물다 가는데
마침 산들바람이 불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올라가면 계속 나오는 큼직큼직한 바위, 기암괴석, 절벽, 푸르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역시 계곡은 여름이 제맛이다.  

 
  
오랜 세월을 짐작케하는 바위들과 나무들의 조화 .. 그리고 물…

 

 

하늘빛이 수면에 내려와 물결을 살려준다. 
 특히 물오른 여름 나뭇잎들은 역광을 받아 찬란한 초록 빛을 뽐내고 있었고,
새로운 생명의 움직임은 이 한여름에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모두가 그림이다.
물과 바위는 마치 동양화를, 나무와 풀들은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녹음 속에서 신록들이 빛을 받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셔터가 들어간다. 
처음부터 두타산 산행은 예정에 없었고 다만 쌍폭, 용추폭포까지는 가보려고 했으나,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더니, 계곡물에 발 담그고 주위 풍경에 심취하다 보니 시간이 무척이나 흘러 버렸다.  

이렇게 신 벗고 계곡에서 한참을 쉬었다.  無念無想 
무릉반석에 인접한 삼화사에서 지체한 이유도 있긴 하다.
어쨌던 폭포 촬영은 다음 기회로 남겨 두었다.
폭포 촬영은 삼각대를 놓고 슬로셔터로 촬영해야 제맛인데,
삼각대를 안 가져 왔으니 가면 뭐하겠느냐고 중얼거리며 내려왔다. 

삼화사 처마의 풍경소리가 무릉계곡을 휘감는듯
 
 
 
삼화사의 여름꽃 

삼화사 삼층석탑과 암벽 
풍광이 좋은 곳에 가면 광각렌즈로 그 광경을 한 프레임에 다 집어넣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카메라 프레임은 사람의 눈과 달라 느낌이 좋은 부분에 비중을 두고 봐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무엇에 주목을 했는지를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풍경을 부분적으로 촬영을 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어찌보면 욕심을 더 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광선의 조건이 화면 정리를 도와주지 않는 이상, 전체적인 풍광을 잡으면 기록성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
화면 안에 요소가 많아지고 디테일이 떨어져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과 설명을 목적으로 한 사진이라면 포괄적인 사진은 꼭 필요한 사진이기도 하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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