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맞이로 유명해진 정동진.
 이제는 새해 첫날 이외에도 일출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정동진은 일년 내내 북적인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이자, 해변에서 가장 가깝게 위치한 역이라 해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는 정동진역을 찾은 것은…. 15년 됐을까?

  

정동진의 파도와 자연스러이 생긴 모래언덕

  당시 모 인사가 이곳에 가자고 했을 때 무슨 지명이 사람이름 같을까… 생각했다.
알고 보니 서울(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는 것에 유래했다는 것이었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런대로 의미가 있는 장소라 생각되어 카메라를 매고 제법 먼 길을 찾아 나섰다.
 막상 가보니 정말로 해변에 기차역이 있었다. 그래서 입장료를 내야만 해안(해수욕장)엘 들어갈 수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의 정동진역 -- 역사, 역표지판, 가로등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변으로 가기 위해 철길을 건너가려니 정면에 삐딱한 소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고현정 소나무’란다. 당시 고현정이 이 나무 앞에서 촬영 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나무에다가 배우 이름을 붙이나… 그것도 공공시설 안에 있는 나문데…’라는 생각을 하며 건너가니 드넓은 바다가 원시적인 모습으로 모래사장과 함께 내려다 보였다.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고현정 소나무와 그 밑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 (정겨운 느낌이다)

  순간, 인공의 때가 타지 않은 ‘태고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 여러모로 유명한 해변치고는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여름 제철은 아니었지만 사람 한 명 찾기 힘들 정도였고,
중간 중간엔 파도가 만들어낸 모래언덕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파도 역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정동진 해안을 넘나들고 있었다.
셔터가 저절로 눌러졌다.

 

 

이날 파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넓은 정동진에서 유일했던 모델

  배가 출출해져 역 부근에 어촌이 있기에 식당을 찾았다.
그 흔한 횟집 하나 없고, 다만 간판도 없는 조그마한 라면집이 하나 있었다.
입구에 ‘모래시계 식당’…인가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편의시설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한적한 바다, 기차역, 어촌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라면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는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찾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정동진 구경이 되고 말았다.

 

 

 
모래가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 물이 들어오면, 잘 꾸며놓은 스타디움의 트랙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사보업무를 하다가 대언론 업무로 담당업무가 바뀌면서, 홍보교육을 며칠 나간 적이 있었다.
그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 홍보팀에 소속된 사람이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두 분이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는데, 강원도 공무원이었다.
당시 강원도 관광지를 어떻게 하면 잘 홍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중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정동진을 취재하여 실은 사보를 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 분들이 그때 교육에 많은 배움이 있었는진 몰라도,
그 이후로 기차와 연계한 여행상품과 함께 정동진 홍보에 열을 올리는 강원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후 정동진을 찾을 때마다 차량이 입구부터 뒤엉켜져 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먼 발치로 정동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주위에 팬션이며, 호텔, 식당들 그리고 온갖 조형물이 세워져 첫 느낌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아름다운 해안으로 치자면, 동해시의 추암이 훨씬 나은 듯한데…
정동진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홍보의 승리, 마케팅의 승리다.
하지만 이를 보고 정동진이 나빠졌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정동진의 모습이, 느낌이 아니기에 두 번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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