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문틈으로 들어온 겨울 광선

 
 사진병으로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하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첫 자취집은 건평 20평이 채 안 되는 한옥집이었는데, 이 집에서도 문간방이었던 내 방은 2평 정도의 넓이로 책상 놓고 비키니 옷장을 놓으면 두 사람이 자기에도 빡센 그런 방이었다.
난방은 두꺼비집을 이용한 연탄방(툇마루 밑에 연탄 화구가 있고 아랫목으로 열기가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고 연탄 위를 철판으로 만든 두꺼비집으로 씌워 열기를 방쪽으로 유도하는 시스템(?). 그 위에 일반적으로 위로 손실되는 열을 활용내지 방지하기 위해 솥을 올려 놓고 물을 데운다. — 설명이 되려나..)이었는데, 외풍이 센데다, 방으로 가는 열효율이 좋지 않아 겨울에는 항상 추위에 떨어야 했다.
누워서 입김으로 도너츠를 만들 수 있었고, 주전자에 물을 떠 놓으면 얼어서 마시질 못할 정도였다. 연탄을 아끼기(이틀에 3장) 위해 불구멍을 거의 막아놓다시피 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방이 추웠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말았다. 어쨌던 겨울 철에 집에 있을 때에는 하루에 2~3시간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휴일 오후, 잠에서 깨어 누워서 창호문 쪽을 바라보는데, 창호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창호문과 문틀 사이 좁은 틈으로 빛이 들어와 문살과 창호지의 우둘투둘한 요철을 부각시키면서 문틀의 요철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든 상황인데, 햇살이 2~3미리 밖에 안 되는 틈새로 ‘직방’으로 들어오는 흔치 않은 순간을 본 것이었다. (겨울 밤엔 이 틈새로 황소 바람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뽑아 들고(다행히 필름이 장전되어 있었다)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딱 3장밖에 안 찍었다… 아니 못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상황은 바뀌어버린 것이다. 태양이 가만이 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추위에 떨던 생각도 들게 하지만, 작품성보다는 우연성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태양의 각도가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는 시간이 채 1분을 넘지 않는데, 그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방에서 7~8년을 더 살았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은 만날 수 없었다. 예상컨대, 계절이 바뀌면서 그 태양각도는 같은 시간대라도 바뀌었을 것이고, 그 계절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집에 없거나, 날씨가 흐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내가 어두웠다는 점도 이런 장면이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인공조명을 이용하면 가능하겠지만, 순수 100% 태양광으로 이런 상황을 만나기란, 특히 한옥이 드문 요즘에 정말 힘들 거라 생각된다.
 
 
 
 
얼마 전 이 동네를 찾아가봤는데, 살던 집은 벌써 옆집들과 함께 헐려 빌라로 변해 있었고… 이제 도시가스도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당시 주인 아주머니(할머니?)는 내가 회사 취직해서 대리 달 때까지 ‘학생’이라고 불렀다. 사실상 다른 마땅한 호칭이 없었을 것이다.
그 집에 10년을 살 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환경에 대한 불편함보다 귀차니즘이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쨌던 이 사진이 10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찍은 유일한 사진(기념사진 포함)이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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