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사진의 사이즈 --- 규모의 선택이 필요하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온라인상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사진을 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굳이 오프라인 상에서 사진전을 해야 할 이유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진 동호회가 아날로그적 전시를 하는 것을 의례화 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공동의 작업을 통해 온라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일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하드에 저장하여 모니터 상에서만 보면 될 것을 굳이 인화를 해서 앨범에 넣는 심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마추어 사진전(단체전)을 가보면, 대부분 전시된 사진의 사이즈가 비슷비슷하다. 보통 11*14(인치) 또는 거기에서 가로 세로가 약간 변형된 사이즈 정도다. 이렇게 고착화 된지 20~30년은 되지 않았나 싶다. 왜 아마추어 사진전의 사진은 이 사이즈에 맞춰져 있을까.

 컬러사진의 경우 이 사이즈가 일반 현상소에서 보편화된 사이즈 중 가장 큰 사이즈이기도 하지만 가격도 적당하다. 그리고 액자의 크기를 다양하게 하면 액자의 비용도 폭등하기 때문에 하나의 사이즈(가로 세로 비례 포함)로 통일하게 되었을 것이다.

 본인들이 직접 작업할 수 있는 흑백사진의 경우는 인화지 사이즈 선택에 다소 자유로울 수 있겠으나 역시 그냥 선배들이 하던 데로 가는 것 같다. 그 이유로 “아마추어 단체전이니 회원간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아쉽지만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나… 경제적 여건도 그렇고..”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크게 뽑으면 살아나는 사진이 있고, 또 가로로 또는 세로로 길게 뽑으면 살아나는 사진이 있는 데도 천편일률적인 비례와 사이즈로 뽑는 것은 사진을 몰개성화하여 출품된 사진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다. 경제력 부족을 빙자한 노력 부족이며, 촬영에 치중하고 암실 작업을 등한시한 탓이다.

 

””Blue Castle””—포토로그 중에서

 

 30년 전쯤 필자는 고등학교 때도 사진전을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다. 전시 사진의 기본 사이즈는 전지. 필름 입자 상태가 안 좋거나 주제가 좀 약하다 싶으면 전지를 반으로 자른 반지 사이즈로 뽑았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좀 더 새로운 것에 도전을 했었다. 롤지에 도전을 했었던 것이다. 구입했던 롤지의 사이즈는 폭이 약 1미터에 길이가 6미터 정도였는데, 사진의 특성에 맞춰 자유로이 잘라다 썼다.

 필자가 찍은 사진 중에 ‘리플렉션’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검은 세단을 정면에서 촬영한 것이었는데, 뒤에 있는 건물이 차에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특이한 분위기를 내는 사진이었다. 선배 한 명이  이 사진을 실제 차 크기로 뽑아보자는 의견을 냈다. 이것은 사진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뜻도 있었으나, 다른 고등학교 사진반에서 하지 못하는 뭔가 기념비적인 일을 하자는 치기 어린 마음도 작용했다.

 사이즈가 커서 확대기의 헤드를 돌려 벽면에 슬라이드 쏘듯이 해야 하기 때문에 좁은 암실에서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해가 진 다음 사진반실에서 하기로 했다. 인화지를 잘라서 테스트를 한 후 인화지를 벽에 붙이고 노광을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차별 노광(닷징 및 버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안그래도 거리가 멀어 긴 노광 시간이 더 늘어났다. 기억으로는 약 1시간 정도를 긴장감 속에서 빛을 준 것 같다. 이거 망치면 다시 뽑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화를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확대기의 조리개를 열고 빛을 주면 노광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렇게 사진을 뽑는 사람은 무식하거나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빛을 준 다음에는 현상도 문제. 이 인화지에 맞는 트레이(바트)가 없기 때문에 반실 바닥에 넓적한 각목으로 인화지 크기에 맞게 틀을 짜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현상액을 부었다. 노광을 마친 인화지를 현상액에 담그자 마침내 자동차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중학교 시절 첫 현상을 했을 때의 감동 그 이상이었다.

차체만한 상(실제 차 크기의 2/3는 되었을 듯)이 떠오르는데 노광도 적절하여 상이 떠오르는 속도도 적당하고… 눈물 날 뻔했다. 부분적으로 디테일이 잘 안 나온다 싶으면 그 부분에 가서 입김을 불고 손으로 문질러 줬다. 이런 행동은 전지작업 때도 하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열을 가해 현상속도를 올리는 행위다.

밤 12시가 넘긴 시간에서야 수세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학교 경비 아저씨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 때의 뿌듯함은 아직 가슴에 남아 있다. 전시회 내내 타 고등학교 사진반 학생들이 찾아 오면 일부러 안내를 해주며 이 사진의 위압감 앞에 놀라는 얼굴을 즐겼다.

당시에 사진 작가 중 김영수씨는 여러 계층의 사람 전신을 찍어 사람 크기로 인화를 하여 전시, 많은 주목 받기도 했다. 20여년이 지난 최근에도 ‘광대’라는 주제로 전시가 있었는데, 사람 크기의 사이즈로 인화하여 전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용적이건 방법적이건 간에 새로운 시도는 사람을 항상 설레게 한다.

 

사진의 진화도 돌연변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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