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찍는 사진

입력 2007-11-29 11:40 수정 2008-06-15 11:18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반 첫 이론교육시간. 한 선배가 새내기 회원들에게 물었다.


 “사진은 무엇으로 찍냐?”


물론 모두 “카메라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카메라는 무엇으로 찍나?”


한 친구가 원기왕성하게 “손가락이요”라고 대답했고,


그 친구는 시범케이스로 선배한테 얻어 터졌다.


그리고 그 선배는 근엄한 표정으로 한마디 날렸다.


“사진은 발로 찍는 거다.” 


당시 이 짧은 말 한마디에 필자는 전율이 느껴졌다. 지금이야 사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말이겠지만 당시에 이 은유적인 표현은 나로 하여금 사진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게 했다.


첨언하여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감각이 떨어지면 몸으로 때우고 그래도 안되면 돈으로 때워라.”


돈으로 때운다는 것은 필름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었다.


 


사진에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필름의 사용량’이다.


아마추어는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만나면 한 두 장 찍고 만다. 그러나 프로는 렌즈를 바꿔가며 찍고, 노출도 바꿔가며 찍고 여러 각도로 이동을 하면서 찍는다. 그러니 좋은 사진이 나올 수 밖에… 설령 그렇게 찍어야 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아마추어들은 필름 값의 압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디지털 시대에 있어 필름 값 부분만큼은 모두 프로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다시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가자. 아마추어들이 자신의 영감을 가지고 상황을 만들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신은 그렇게 찍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대학시절, 정기전을 앞두고 한 후배(사진을 시작한지 6개월도 안된)가 사진을 들고 와서 정기전에 내달라고 했다. 집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포인트도 없고 산만하기만 해서, 도대체 무얼 표현하려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촬영의도를 물어보니, 인간의 삶이 어떻고 저떻고.. 장황하기 그지없다. 그걸 알아보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다는 어투다..


나는 “피카소도 초기엔 구상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예를 들며, 필자가 고등학교 때 행했던 “리얼리즘 입문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동대문 시장, 서부역, 남산공원, 세운상가, 명동 등 사람이 많은 촬영지와 목표물을 정해주고 촬영을 해오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고 다시 찍어오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망원렌즈는 사용금지다.(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후배들은 점점 사진의 맛에 심취했고, 중도에 포기한 후배들은 사진에서 멀어져 갔다.


필자의 경우 특히 고등학교 시절 카메라를 들면, 그 때부터 다리 아픈 줄을 모르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필름이 떨어질 때까지 교통수단을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웬만해서는 5분 이상 걷지 않는다) 세상이 모두 피사체이니 딱히 특정지역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아무데나 내려서 찍기도 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을 때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처럼 사물을 본다.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뭔가 필이 박히는 장면을 볼라치면 기억을 해뒀다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흑백사진 시절엔 표준렌즈 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었다. ‘크게 찍으려면 가까이 가라’해서 그렇게 하다가 시장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혹은 서부역 지겟군(지금은 없어진 직업)에게 맞기도 했다. 군부대 근처에서 사진을 찍다가 군인들에게 필름을 뺏길 뻔도 했다.


 


지금은 여러가지 핑계로 다소 사진과 소원해 있지만, 이러한 ‘발사진’의 경험들은 언제라도 과거의 사진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을 갖게 한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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