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카메라 이야기

사진은 초보지만, 카메라에 대해서는 프로인 한겨레신문의 구본준기자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퍼옴을 허락해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카메라, 그게 궁금해졌다

기자생활에서 두 축을 이루는 경력은 문화부와 경제부다. 경제부에선 전자업종을 맡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적성에 맞았던 업무였다. 전자 담당기자 시절 관심을 가졌던 제품은 2가지였다.

하나는 면도기, 그리고 또 하나는 카메라였다.

면도기와 카메라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기계란 점이다. 두가지 모두 사람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는 전자제품이다.
면도기는, 사람 살갗에 직접 비벼대며 쓰는 유일한 전자제품이다.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그 어떤 전자제품보다 강하다. 한번 특정 회사 것에 익숙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일단 시장에서 성공하기만 하면 면도기는 왠만한 다른 전자제품보다 훨씬 장사가 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전세계 수억명짜리 거대 시장을 필립스와 브라운, 파나소닉이 나눠먹고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도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비도 예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 몇몇 공룡기업들이 과점하는게 면도기 산업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이런 점들은 지난해 신문지면에 `면도기 턱밑 전쟁””(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6773.html ) 이란 기사로 쓰기도 했다.

카메라는?

면도기가 `몸이 교감하는 기계’라면, 카메라는 `마음이 교감하는 기계’다. 소유자와 기계가 가장 정서적으로 강하게 피드백 하는 기계다. 그게 바로 카메라의 힘이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런 점들이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관심이 쏠렸던 것은 산업적인 부분이었다. 그건 기자란 직업의 소산이기도 했다. 다른 제품과는 다른 전자제품, 독특한 시장 구조. 거기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까지. 이것 저것 궁금한 게  많았는데 아쉽게도 신문 지면에선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 때 못했던 카메라 이야기를 블로그란 부담없는 공간을 빌어 휘적거려 보려고 한다. 물론 정색 하고 정독할 엄밀한 글은 아니다. 다만 카메라란 묘한 물건이 재미있고, 이 기계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가 흥미로워 혼자 주저리주저리 읊어보는 이야기일뿐이다.

먼저 밝힐 점은 내가 카메라 마니아가 전혀 아니란 점이다. 사진에 빠진 것도 아니고 카메라란 기계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아들 사진 찍는데 쓸 뿐인 평범한 소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모두 그 수준에 머물 것이다.

첫번째 카메라 이야기는 카메라라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다.

실생활에서 제품으로 카메라를 접해오면서 누구나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겠지만, 이 카메라 산업의 역사는 제법 흥미로운 흥망사의 파노라마가 담겨있다.

카메라, 한국산은 불가능한가

전자 담당 기자 시절, 개인적으로 최고 관심사는 후발주자인 한국기업 삼성이 과연 카메라 시장에서 성공할 것인지였다.
카메라 시장이 이전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급속도로 바뀌면서 일어난 가장 큰 산업적 변화는 후발 주자의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었다.

그 이전에도 한국 기업들이 카메라 시장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은 물론 옛 금성(!), 그러니까 지금의 엘지전자도 한때 카메라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 한국 카메라산업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대한광학도 있었다. `코비카’란 브랜드로 제법 오래 풍미했던 카메라였다. 그러나 모두 한때 꿈이었고, 끝까지 꾸준히 도전해온 회사는 삼성뿐이었다.

▲ 1974년 대한광학 코비카 카메라 광고. 제조업 모든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는 카메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은 필름카메라시절, 그러니까 삼성항공 시절부터 꾸준히 카메라에 투자해왔다. 처음에는 미놀타를 파트너로 삼아 시장을 두드렸는데, 남의 이름과 기술을 가져다 하는 장사가 잘 되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만해도 국산 카메라를 산다는 것은 참 용기(!)까지 필요했던 시기다. 기왕 돈 들이는 것, 오리지날 일제로 사는 게 당연했으니까.

▲ 1984년 삼성정밀 카메라광고. 오리지날 미놀타와 구분하는 방법은 오른쪽에 삼성의 옛 별 셋 마크가 달려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이후 케녹스란 이름으로 조금 자리잡았지만 삼성이 원하는만큼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공고한 메이저들의 시장속에서 삼성이 포기하지 않고 버틴 덕분에 마침내 제대로 붙어볼 기회를 잡은 것이 바로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카메라란 브랜드 이름값으로 장사하는 시장인데, 삼성이 고급소비재인 이 시장에서 `B to B”” 제품인 반도체처럼 승부를 내려는게 무리가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필름카메라 시절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디카로 바뀌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전 필름 카메라 시장까지는 시장의 쟁패는 광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디지털로 바뀌면서 광학기술 못잖게 디지털 전자기술의 중요성이 커졌다.

광학부품인 렌즈는, 전문업체에서 사오면 그만이다. 반면 카메라의 기술적 성능을 좌우하는 칩기술은 기존 카메라업체들보다는 오히려 반도체 등이 강한 전자기업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된다.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보여준 저력으로 이제 삼성도 진짜 승부를 걸 기회가 온 것이 분명하다. 실제 삼성도 그런 포부를 밝히고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다. 기사로는 중립을 지켰지만, 속으로는 삼성이 한번 파란을 일으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란 시장에서 일본과 독일을 뺀 다른 나라 기업이 한 번이라도 메이저급으로 떠오른 적이 있는가? 한국 기업이 그 일을 해낸다면 그건 분명 대단한 일이며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기업이 디지털로 바뀐 카메라 시장에서 과연 통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이 실험은 앞서 소니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진작부터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생산을 오래 해온 삼성과 달리 소니는 필름카메라 시절 내내 비디오카메라에만 집중했던 기업이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자 소니는 발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단숨에 콤팩트 디카 시장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 소니의 최신 플래그십 바디 알파 700.

여기엔 전자기업이란 강점이 크게 작용했다.

소니는 렌즈는 카를 자이스에게 사온다. 대신 핵심부품인 시시디는 직접 만든다. 여기에 소니의 강점인 차별성 있는 디자인이 소니 디카 `사이버샷””에 날개를 달아줬다.
발빠르게 디카 시장에 뛰어든 전자업체는 소니만이 아니었다. 전자계산기에 출발해 일본을 대표하는 엘시디 전문기업으로 자리잡은 카시오도 콤팩트 디카 시장에선 만만찮은 자리를 차지했다.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아무도 상상못한 일이다.
일본 최대의 전자업체 마쓰시타도 마찬가지다. 파나소닉 브랜드에 왕년의 명가 라이카를 가져다 붙여 시장에 진입했고, 교세라등 기존 업체들이 나가떨어지는 틈바구니에서 잘 버텨내고 있다.

반면 기존 잘나가던 카메라들을 보자. 기술력에서 좋은 평을 받았던 미놀타를 보면 기업의 인생유전을 실감할 수 있다.
삼성이 기술 때문에 매달렸을 정도로 강했던 미놀타는 일본 카메라를 대표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점점 시장에서 밀리더니 결국 코니카에게 흡수되어 코니카-미놀타로 바뀌었다. 그것도 잠시, 코니카-미놀타가 소니에게 빨려들어가면서 미놀타팬들에겐 서운하기 짝이 없게도 이름마저 사라졌다. 지금 미놀타의 흔적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소니의 디지털SLR 알파 시리즈의 바디 디자인에, 그리고 그 렌즈 마운트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때 일본 카메라의 대명사로 일안리플렉스의 대표주자였던 펜탁스는 또 어떤가.

펜탁스는 카메라 회사도 아닌 렌즈회사 호야에 흡수된 상태다. 그나마 호야가 계속 펜탁스 사업을 유지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삼성과 연합군을 이뤄 삼성에 바디를 공급해주고 있지만, 한때 “카메라는 아사히-펜탁스”란 말을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알 수조차 없다..
기존 강자들을 이렇게 처절하게 밀어내면서 소니와 카시오 등 후발 전자업체들은 전자기술을 경쟁력 삼아 카메라 시장에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최근 제네랄 일렉트릭까지 가능성을 보고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삼성은 이런 처절한 전장에서 잘 버티며 오히려 출발은 늦었지만 컴팩트 디카 시장에선 상당히  점유율을 높였다. 초기 허접스러워 보였던 디자인도 과도기적 제품이었던 `샵 시리즈””에서 비로소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하더니 요즘 주력인 `블루”” 시리즈에선 차별성있는 디자인 라인업을 구축했을 정도다.

▲ 삼성의 컴팩트 디카 `블루”” 시리즈 최신 모델 NV20. 검정 몸체에 렌즈에 푸른 링을 두르는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삼성이 카메라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처럼 그룹차원에서 승부를 거는 메인 아이템은 아니라 삼성테크윈 차원에서 주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 앞으로 이 격변하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한국의 삼성과 일본의 여러 업체들이 벌일 승부는 흥미진진한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삼성이 과연 카메라에서도 특유의 저돌성으로 또 다른 역전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무리 삼성이라도 카메라는 힘들지 않겠냐고 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기술적 측면에선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보았듯 카메라 시장은 예상 이상으로 업체들의 흥망이 심했다. 같은 판세가 변함없이 계속되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는 그 어떤 시장보다 치열한 승부가 벌어진다. 디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업계에 구조조정의 태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은 크다.

영원한 강자는 틀림없이 없다

실제 기업들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 그토록 확고부동해보였던 1등 기업도 흐름을 한번 잘못 타면 순시간에 패자로 전락하고 만다. 전자업종은 한번 기술력이 앞서면 계속 앞서갈 것만 같은 데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 업계 표준이나 핵심기술, 패러다임이 바뀔 때 바로 이런 대역전이 일어나곤 한다.

가장 첨단 업종이라는 휴대폰 시장의 변천사를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1세대(1G) 시절까지만 해도 모바일은 곧 모토롤라였다. 모토롤라 이외의 업체들은 시장에서 사실상 무의미했을 정도다. 에릭슨이나 노키아는 1위가 비교가 안되게 한참 처진 명목상의 2위 그룹이었다.
그러나, 2세대(2G)가 되면서 노키아가 모토롤라를 누르고 최강자가 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틈탄 사상 최고의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전자제품에 관한한 전혀 떠올릴만한 나라가 아니었던 변방 중의 변방 핀란드의 휴대폰 회사가 미국 군수산업을 대표하는 통신기기 최강 모토롤라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걸 노키아는 해냈다. 노키아는 휴대폰을 초고가 첨단 제품에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품으로 가장 앞서 개념을 바꾼 회사였다. 그 덕분에 지금도 저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굳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3세대로 바뀌면서 약진한 회사는 바로 삼성이다. 삼성은 휴대폰이 3세대로 넘어가면서 반도체 기술의 강점을 앞세워 `썩어도 준치’모토롤라와 2위 그룹을 형성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씨디엠에이와 지에스엠을 모두 만들면서 축적한 기술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도체의 강점과 선단식 그룹 구조에서 쥐어 짜내는 경쟁력, 한국 기업으로선 그동안 없었던 디자인 강점을 더해 1급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런 변화는 지금은 당연한 것 같아도 누구도 점치기 힘든 변화들이었다.

늘 `그 회사가 그 회사 같은”” 카메라 업계도 휴대폰 못잖게 엎치락 뒤치락 순위 변화를 겪으며 챔피언이 바뀌어 왔다. 지금은 일본 기업들이 휩쓸고 있어서 원래부터 일본이 장악해온 시장 같지만, 처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세기의 절반 가까운 기간 동안 카메라 업계의 최강은 독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 카메라의 판도는 비싸고 좋은 독일 카메라, 그리고 값싼 일본 등 나머지 카메라의 구도였다. 독일 카메라에서도 판도는 라이카, 그리고 라이카가 아닌 카메라의 판도였다.

1925년, 2년전 출범한 라이카가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생산하면서부터 독일은 카메라 최강국이 된다. 카를 자이스, 콘탁스, 포익틀랜더, 그리고 롤라이까지. 스웨덴에서 핫셀블라드란 걸출한 카메라가 나왔지만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카메라 산업의 역사를 만든 고유명사들은 몽땅 독일에서 생겨났다.

▲ 초기 라이카. 라이카는 30년 넘게 카메라 디자인과 기능의 표준으로 군림했다.

이후 카메라는 독일만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지금도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명기들이 쏟아졌고, 독일 카메라의 아성은 깨뜨리기 힘들만큼 단단했다. 역시 독일에서 만들긴 했지만 미국 기업으로 인지되는 코닥이나 다른 일본의 업체들은 모두 저가 카메라 시장을 놓고 치고박아야 했다. 최고급 모델은 늘 독일, 그 중에서도 거의 대부분은 라이카의 것이었다. 라이카의 빨간 동그라미는 그 자체로 카메라를 대표했다.

▲ 라이카(에른스트 라이츠)의 저 빨강 동그라미 마크에 사람들은 아낌없이 거금을 지불했다.

카메라 초한지-독일의 몰락, 일본의 극적인 승리

그러나 한세대 넘게 지속된 독일의 전성기는 70년대 놀랍게도 순식간에 막을 내리고 만다. 만년 2등이었다고는 하나 일본의 카메라들이 최강 독일을 누르고 카메라의 패권을 빼앗아간 것은 믿기 힘든 역전극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상의 자리에 안주한 독일의 방심이 원인이었다.

후발주자였던 일본의 니콘과 캐논 등은 일본의 강점인 전자기술을 발빠르게 카메라에 도입하며 차근차근 경쟁력을 축적해갔다. 어느 정도 기술적 격차가 극복된 다음, 승부는 지금껏 카메라의 표준이 되고 있는 `일안반사식””(싱글 렌즈 리플렉스, SLR)에서 갈렸다.

일본은 일찍부터 일안리플렉스에 전력투구했다. 반면 독일은 일안리플렉스보다는 기존 레인지파인더방식을 고집했다. 전자기술을 보탠 일본 카메라들은 기계적 성능에서 앞서는 부분을 늘려가며 가격은 독일제보다 싼 대신 성능은 그 못지않은 제품으로 약진했다. 가장 냉혹한 승부처인 미국 시장에서 일본은 마침내 독일 카메라를 누른다.

올림푸스 신들처럼 강해보이던 독일 카메라들은 속속 무너졌다.

1971년 독일 카메라를 대표하는 카를 자이스가 일반 소비자용 카메라 생산을 포기한 발표는 카메라 산업의 역사가 바뀌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카를 자이스-이콘’이란 당대 최고의 카메라 브랜드가 그렇게 사라졌다. 이듬해, 역시 카를 자이스의 간판이었던 포익틀랜더 상표도 롤라이에게 넘어간다. 그나마 같은 독일 기업 품에서 연명하나 싶었으나, 아예 롤라이까지 주저앉고 만다.

카를 자이스는 자존심인 렌즈 산업을 이어가기 위해 그룹의 또다른 자존심 콘탁스마저 도려낸다. 콘탁스란 이름은 일본 야시카에게로 넘어간다. 이 모든 것이 1970년대 초반 4~5년 사이의 일이다. 그 뒤로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구입할 수 있는 신제품 독일제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모토롤라를 누른 노키아처럼 라이카를 필두로한 독일 카메라를 누른 믿기 힘든 역전을 일궈낸 주인공 가운데 최강자는 니콘이었다. 튼튼한 만듦새, 편리한 성능. 믿음직한 디자인으로 니콘은 카메라의 새로운 제왕이 되었다. 니콘의 전성기는 꺾일 줄 몰랐다.

그러면 그 뒤 다시 30년이 지난 지금의 니콘은?

필름카메라의 최강자로 군림한 니콘도 라이카처럼 믿기지 않은 역전을 당한다. 카메라 시장이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바뀌면서, 그저 고만고만한 넘버 투 그룹 중 하나로만 여겨졌던 캐논이 판도를 뒤집은 것이다. 역전은 일찌감치 니콘 등이 일안리플렉스를 주시해 독일 카메라를 따돌렸듯 일찌감치 캐논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으로 바뀔 것을 예감하고 투자해온 덕분이었다.

디지털 변화를 읽어낸 캐논의 역전승

한번 디지털에서 잡은 기세는 무서웠다. 디지털 시장으로 바뀐 이후, 캐논은 디지털 카메라의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사소한 것 같아도 한발 빠른 기술 표준화와 특유의 면밀한 마케팅으로 캐논은 니콘을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지금 캐논은, 세계 소비자들이 10여년 전에 생각했던 그 캐논이 아니다. 지금 일본 최고의 기업은 소니와 마쓰시타(파나소닉)이 아니라, 캐논과 닌텐도다. 라이카의 카피 카메라를 만들던 캐논, 그리고 화투짝 만들던 회사에서 출발한 닌텐도가 세계 최강 제조업 국가 일본의 간판 기업이 된 것은 기업 흥망성쇠의 파란만장함을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보통 카메라 업체, 조금 더 잘 봐주면 복사기까지 만드는 회사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캐논은 지금 세계적인 첨단기업이다. 기술력을 보여주는 미국특허 취득건수에서 캐논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정보기술기업 가운데 하나인 삼성전자보다 많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술력 덕분에 역전은 가능했다.

▲ 캐논의 기함 1D 마크3. 디카 시장으로 바뀐 뒤로 캐논은 풀프레임 바디 시장에서 독주해왔다.

잠시 곁가지로 빠지자면, 캐논이 이렇게 강한 기업으로 떠오른 데에는 캐논만의 독특한 ‘회의문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캐논이 다른 회사와 가장 다른 부분은 바로 `회의””다! 그리고 이런 회의가 캐논의 경쟁력으로 불린다. 도대체 왜?
1999년 사카마키 히사시 사장이 취임 직후 캐논의 체질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손 댄 것은 회의문화를 바꾸는 일이었다. 사카마키 사장은 회의실 탁자 높이를 30㎝ 높여 사람들이 서서 회의를 하게 했다. 집중력이 높아져 회의시간이 줄고 효율이 높아진다는 지론에서였다. `미리 주제를 밝히고 준비한 뒤 참석하라””, `애매한 표현을 구체적으로 바꿔라””, `침묵하는 이나 평론가같은 발언을 하는 이를 막아라’등의 회의원칙도 세웠다.

이후 실제로 캐논의 회의시간은 크게 줄었고 회의문화가 바뀌면서 회사도 활력을 얻었다. 캐논의 이 `서서하는 회의’는 기업 문화를 바꾸어 경쟁력을 높이는 작지만 중요한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카메라, 기술과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이긴다

다시 카메라 이야기로 돌아오자. 좌우지간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카메라 시장에선 후발 주자라도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잘 받아들여 치고 나가면 최강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디지털 환경은 이런 변화를 더욱 부추긴다. 앞서 말했듯 소니의 약진이 그런 가능성을 증명한다. 삼성도 그런 가능성에 기대한다. 삼성과 소니가 그동안 다른 분야에서 보여준 실적을 보면 카메라에서도 그러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도 디카로 카메라를 시작하는 어린 세대들에겐 소니와 삼성이란 이름이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전 가능성이 솔직히 무척이나 낮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카메라가 다른 전자제품과는 다른 상품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엔 기술 이상의 필수성분이 있다. 고급 카메라일수록 사는 이의 비논리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무엇보다도 브랜드란 것이 구매를 결정하는데 어떤 제품보다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카메라란 업종에서의 브랜드 파워란 소비자들이 절로 충성심을 갖고 따르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은 그 브랜드가 주는 어떠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하루아참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니와 삼성이 일등 브랜드가 된다면 그건 앞으로 기술 못잖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덕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그런 날은 무척 오래 남아있다. 소니와 삼성은 이제 막 출발했을 뿐이다. 니콘이 독일을, 캐논이 니콘을 이기는 데에는 30년 가까운 숙성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계기를 잡았을 때 급속도로 빠르게 추월했던 것이다.

분명 카메라는 만드는 업체로선 쉽지 않은 제품이다. 무조건 기술이 좋다고 해서, 그리고 성능 대비 싸다고 해서 잘 팔리는 게 아니다. 전자제품이면서도 가장 비경제적, 비디지털적, 비논리적인 요소가 구매에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전에 기술적 혁신을 따지는 전문적인 구매기준이 늘 존재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합쳐졌을 때 사람들은 특정 카메라 브랜드에 스스로 매혹된다.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믿음으로 제품과 회사를 평가한다. 그래서 카메라 소비자들은 다른 제품 소비자들과는 달리 같은 메이커를 쓸 경우 독특한 동지의식을 느끼며 제품에 대해 강하게 자기 정체성을 투여한다.

그러면 요즘 카메라 유저들은 어떻게 카메라와 관계를 맺고, 어떻게 교감하고 있을까? 그리고 카메라팬들은 자기 카메라와 회사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다음편이 그 이야기다.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장난감, 카메라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불리는 것들이 있다. 자동차와 오디오, 그리고 카메라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어른들을 매혹시키는 장난감으로 꼽힌다.

▲ 토이카메라 홀가. 디카와는 다른 아날로그 필카의 독특한 느낌을 원하는 층들에게 인기를 모으는 틈새 카메라다.

자동차는 매력적이지만 너무 비싸고 덩치가 커 여러 대를 가져보는 즐거움을 맛보기가 99.99% 사람들에겐 불가능하다. 오디오도 자동차보다는 덜하나 덩치와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자동차처럼 타고 다닐수도 없고, 카메라처럼 들고 다닐 수도 없다!

반면 카메라는 크기가 작아 보관도 쉽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마련하고 즐길 수 있는 어른용 장난감이 됐다.

▲ 고급 카메라 하셀블라드 h3d. 3900만 화소에 가격이 3천만원 이상이다.

앞글에서 썼듯 카메라는 어떤 기계 제품보다도 주인과 교감한다. 얼굴에 비벼대는 휴대폰도 카메라처럼 사람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가격은 비슷해도 휴대폰은 사람들에게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반면 카메라는 소장품으로 대접받는다.

왜 그럴까? 사람이 직접 조작해서 결과물을 뽑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카메라는 `추억””을 담아주기 때문일 것 같다. 오랫만에 앨범을 꺼내면 사진들에 담긴 추억과 함께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지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메라를 아끼고, 점점 관심 쏟다 보면 자기 정체성의 상징처럼 고르게 된다. 카메라에 더욱 빠진 이들은 자기가 고른 메이커에 충성심을 발휘하며 `니콘빠”” `콘탁스빠”” `펜탁스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란 정말 묘한 녀석이다.

그런데, 항상 필름만 쓰던 카메라가 디카로 바뀌면서 카메라도 소모품처럼 되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그렇다는 말이다. 디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란 것의 매력을 알려주었지만, 반대로 기계 자체는 오히려 가전제품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건 묘한 아이러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로모카메라 같은, 화질은 떨어져도 느낌이 독특한 카메라에 다시 눈길을 돌리고, 또 잠시 잊었던 필름카메라의 매력에 새삼 눈뜨게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익힌 10대나 20대 젊은층들이 오히려 필름카메라의 `불편한 맛”” `독특한 맛””을 발견하곤 필름 카메라로 가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다.

▲ 예상못한 우연한 효과가 새로운 재미를 주는 로모카메라.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개구리눈 로모카메라.

사진이란 취미나 이미지의 미학을 떠나 카메라란 기계 자체에 대한 관심 측면에서도 에전 필름카메라들은 재발견 되고 있다. 지금의 카메라들과는 다른 기능적 디자인의 매력도 한몫한다. 클래식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 카메라들은 이제 더욱 매력적인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전 카메라가 비쌌던 탓에 수동 카메라들은 `있는 집””에서나 갖는 물건이었다. 지금 40대 이상에게 수동카메라는 결혼같은 계기를 통해 정말 큰맘 먹고 사는 로망의 물건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도 언젠가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마음먹는 것이 이른바 수동 카메라였다.

그런 카메라들이 지금 DSLR로 진화한 것이지만, 그런 정서와 감성까지 고스란히 함께 계승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카메라 업체가 가지는 아이덴티티에 동화되고 매혹되며 심지어 숭배까지 하는 카메라 소비자들의 습성만큼은 그대로 이어졌다.

사진 못잖게, 또는 사진 이상으로 사진기란 기계 자체에 매혹된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정말 가장 아름다운 기계다. 산업디자인 예술품이자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계다. 거기에 각 메이커의 이름이 지닌 느낌이 더해진다. 가령 롤라이35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카메라 이마에 새겨진 롤라이란 글자가 주는 그 매력은 다른 어떤 카메라도 대신 못하는 특별한 그 무엇이다.

▲ 롤라이35.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카메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렌즈를 카메라 몸체에 밀어넣는 디자인은 당시로선 무척이나 파격적고 혁신적이었다. 1966년부터 1982년까지 20여년 동안 생산되며 20여종이 나왔을만큼 인기를 누렸다. 중간에 원가 절감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는데, 그래서 `메이드 인 저머니””가 `메이드 인 싱가포르””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특히나 카메라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이나 기능의 미묘한 차이를 소유자들이 자기의 개성과 철학의 차이로 받아들이며 선택하기 때문에 더욱 제조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소비자들은 그런 선택기준을 뒷받침하는 나름대로의 기준과 이유를 강하게 주장한다. 이처럼 기기를 전문가 못잖게 꼼꼼히 따지고 구매하며, 같은 메이커 사용자끼리 취향을 공유하며 나름 논리를 만들어내는 소비자들의 행태는 다른 소비재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각 메이커별 동호회는 물론 인기 모델별 동호회가 활발하게 조직되어 있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믿는 카메라 구매의 기준과 철학은 지금 카메라 시장 판도와 각 기업들의 위상을 결정짓는다. 카메라팬들의 취향을 보면 시장을 읽을 수 있고, 카메라의 진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카메라에 대한 각 메이커별 유저들의 믿음은 지금 카메라 시장을 지배하는 믿음과 그 믿음을 강조하는 기술들을 반영한다.

남자니까 니콘, 일등 캐논, 감성의 펜탁스, 후지의 색감

가령 니콘이나 캐논, 펜탁스 팬들에게 소니는 카메라 회사가 아니라 가전회사일뿐이다.

반면 디카와 함께 생겨난 소니팬들에겐 소니의 오렌지색 렌즈 테두리와 알파 마크는 다른 카메라와는 다른 소니의 자존심이다. 미놀타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최첨단 카메라가 소니라고 소니미놀타팬들은 굳게 믿는다.

캐논 팬들에게 캐논이란 브랜드는 그 어떤 카메라보다도 앞선 기술력의 상징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표준을 만들어내는 업체, 업계 1위란 위상, 그런 것들이 캐논의 자랑거리다. 디지털카메라의 심장인 촬상소자를 만들어내는 몇 안되는 업체이자, 1:1 풀프레임 바디를 독주해온 업체가 캐논이란 점이 캐논 팬들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캐논 이외의 카메라업체 팬들에게 캐논의 힘은 기술력이 아니라 `마케팅능력””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의 상황을 잘 보고 알맞게 치고나오는 제품 기획력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늘 캐논에게 따라다닌다.

이는 캐논 특유의 `상술””로 평가받는 제품 출시전략 때문이다. 보급기는 보급기답게, 중급기는 중급기답게 내는 탓이다. 늘 한 두가지 최신 기능을 의도적으로 제외해 싼 모델을 사는 이들을 아쉽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쓰다보면 아쉬워 상위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하게 만든다고 캐논을 비난한다.

193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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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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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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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논 로고의 변천사. 캐논는 `관음””의 일본 발음인 `콰논””에서 나와 `캐논””으로 바뀌었다. 맨 앞 C자의 삐치는 꺾임이 일반적으로 글자 바깥쪽으로 삐치는 것과 달리 안으로 꺾인 것이 특징이다.

반면 캐논 특유의 화사하고 맑은 발색은 인물 사진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니콘의 경우 흔히 투명한 느낌이 지나쳐 `시체 색감””이라고 놀림받는다.

두루 무난하게 쓰기에 너무나 좋은 캐논. 특히 인물찍기에 좋은, 대신 싼 것 사면 기능이 조금은 부족한 캐논. 그럼 그 최대 라이벌 니콘은 어떤가.

니콘은 누가 뭐래도 필카 마지막까지 최고의 카메라 회사였다. 예리한 니콘 특유의 사진은 보도용으로 최고였다. 사진 최고의 프로들인 사진기자들의 사진기는 언제나 니콘이었다. 적어도 2000년대 전까지는.

그러나 디카로 바뀌면서 포토샵같은 후보정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자유자재로 보정하게 되면서 니콘의 그런 사진 특징은 빛을 잃었다. 반면 예전 보도용이나 전문가용으로 쓰기에는 약점으로 평가받던 캐논의 화사한 사진은 디지털 시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사람 찍기에 좋고, 보도용으로 쓰려면 약간 보정만 하면 되니까. 거기에 디지털 시대에 발빠르게 대처한 전자기술이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신문사 카메라는 모두 캐논 일색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니콘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인가? 아니다. 판매 1등이 아닐 뿐이다. 고유의 정체성은 엷어지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캐논 못잖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리고 캐논에겐 없는 독특한 니콘만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남아있어 보다 강하게 마니아를 빨아들이는 힘을 유지하고 있다.

니콘의 디자인 하이라이트인 바디의 빨강 포인트는 니콘만의 무기다. 까만 바디를 가로지르는 빨강색 세로줄, 또는 디지털 바디 손잡이 위에 새긴 빨강 삼각형. 그 삼각형 하나 때문에 니콘을 고르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 니콘의 유명모델 F4. 왼쪽 그립 부분의 빨간 줄은 이후 니콘 디카의 빨간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니콘 디자인의 상징이다. 니콘의 유명 모델 F3과 F4는 특히 20세기 산업디자인계의 슈퍼스타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지아로가 세운 이탈디자인은 자동차디자인에서 최고 업체로 군림했는데,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여기에 `남자는 니콘””이란 다분히 비논리적이면서도 결정적인 통념이 있다. 니콘의 주력 모델인 d80의 광고모델이 가수 ` 비””인 것은 그냥 단순하게 나온 선택이 아니다. `남자는 니콘””이란 니콘 사용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남성적 매력이 강한 비를 내세우는 것이 니콘이란 회사에겐 당연할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상큼한 여성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한다는 것은 니콘에겐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 없다.

하나 더, 니콘은 캐논보다 소비자에게 더 친화적이란 평을 듣는다. 캐논처럼 보급기나 중급기라고 기능 일부를 빼지 않고 화소수만 적을뿐 고급 기능을 그대로 집어넣는 것(물론 이건 펜탁스나 올림푸스도 마찬가지다)이다. 이는 캐논팬들을 공격하는 니콘팬들의 철학적 무기다.

그럼 다른 회사들은 어떨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캐논과 니콘의 독과점이 더욱 강해진 탓에 사람들은 카메라 회사가 예상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올림푸스와 펜탁스가 있다.

올림푸스는 `다른 카메라””다. 디자인도 그렇고 저장매체도 늘 혼자 튄다. 소니처럼. 또한 기술적으로는 나름 `포써즈”” 진영의 맹주다.(물론 따라온 업체는 파나소닉 밖에 없지만). 이름값으로 먹고사는 캐논 니콘에 대항하다보니 같은 값에 더 기능을 많이 넣어 팔아야 하는 숙명탓에 가격도 `착하다””! 동급 모델 가운데 언제나 가장 기능이 많은 편이다. 먼지떨이도, 손떨림도 팍팍 넣어주어 다른 업체들이 따라오게 만든 회사가 올림푸스다.

소형화 경령화에 올림푸스만큼 집착하는 회사도 없다.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DSLR””, 이게 꼭 좋은 거라곤 못하지만 여성 사용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 올림푸스의 예전 주력모델 E-330. 올림푸스의 DSLR E시리즈는 라이브뷰 등 소비자 편의기능을 경쟁사보다 먼저 도입했다.

그러나 카메라 기계적 성능을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올림푸스의 `포써즈””(설명 길게 하면 복잡하니까 대충 넘어가겠다)는 분명 의심거리다. 다른 카메라들보다 이미지를 기억하는 판대기 크기가 작으니 사진이 본질적으로 화질이 떨어지지 않겠냐, 라고 폄하한다. `한번 써보고나 말해라””고 맞받아치지만 써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그게 늘 올림푸스팬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러면 이제 한때의 강자들이었던 펜탁스와 코닥을 보자.

카메라광들은 우스개로 이렇게 말한다. “장인정신 하면 펜탁스. 그러다 회사가 넘어갔지만.” 코닥은? “장인정신 하면 코닥. 그러다가 DSLR 사업 접었지만.”

시장 점유율을 보면 틀림업이 실패했다. 마이너 업체로 전락했으니. 그러나 골수 카메라팬들은 호평하는 회사, 그게 바로 코닥과 펜탁스다.

펜탁스 팬들이 늘 내세우는 것은 `감성””이다. 펜탁스는 감성적인 카메라란 것이다. 카메라란게 원래 감성으로 가지고 놀자는 물건인데 왜 굳이 거기에다 더 감성을 논하는가. 그건 펜탁스가 늘 진한 발색으로 대표되는 강한 색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보정으로 원하는 색감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이전에 카메라 고유의 색감을 따진다. 필름색감, 로모색감, 그리고 펜탁스색감까지 미묘한 그 차이 때문에 돈을 쓴다.

그래서 펜탁스 사용자들은 “펜탁스는 누가 권해서 펜탁스로 오지 않는다. 펜탁스를 쓰는 사람은 알아서 펜탁스로 찾아온다”고 말한다. B형이 많이 쓰는 카메라란 속설도 있다. 개성 강하고 감성적인(나쁘게 말하면 잘난 맛, 튀는 맛에 사는) B형 사용자들이 특히 많다는 비공식적인 추정이 나돈다.

▲ 펜탁스의 빅히트 모델 LX의 기념 한정판 골드 버전. 펜탁스는 기술면에서 시장을 선도했던 업체다.

펜탁스는 카메라 본질적인 면에서 분명 칭찬받을 구석이 있는 회사다.

기술적으로 보면 지금의 싱글렌즈리플렉스 시스템의 틀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회사다.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붙은 기술을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이 선보였다.

소비자 중시 측면에서 보면 더욱 고마운 회사일 수가 있다. 펜탁스는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의 렌즈들을 거의 대부분 지금 디지털 바디에 쓸 수 있게 했다. 다른 회사들은 펜탁스처럼 호환성을 높이지 않았다. 치사하게 말이다. 결국 디카로 바꾸면 렌즈 교환비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펜탁스 사용자들은 거의 그런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됐다. 장롱속에서 30년전 아버지가 썼던 필카 렌즈를 찾아도 거의 대부분 지금 쓰는 아들의 디카에 끼워 쓸 수 있다. 이런 정책은 팬들에겐 큰 즐거움을 줬다. 오래된 수동렌즈를 디카 바디에서 수동으로 촛점 맞춰 쓰는 맛이다. 수동렌즈를 저렴하게 중고로 쉽게 사서 써볼 수 있는 맛은 펜탁스팬들의 자랑이다.

코닥은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든 회사다. 카메라보다는 필름의 역사를 만든 이름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필카 시절의 상당히 초기부터 코닥은 좋은 보급형 카메라들을 많이 내놨다. 최고급 바디는 아니었지만 코닥 카메라는 늘 가격 대비 성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싸고 좋은 카메라란 뜻이다. 물론 필름 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지만.

디지털 카메라 방식이 등장할 때 주도했던 업체가 바로 코닥이었다. 그만큼 기술력에서도 앞섰고, 지금도 앞선 편이다. 촬상소자를 만들어내니까.

그러나 제록스가 컴퓨터 운영체계를 먼저 만들고놓고도  정작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했듯이 코닥도 자기가 차려놓은 새로운 시장의 과실을 전혀 따먹지 못했다. 왜? 그건 기존 거대기업들이 가지는 딜레마다.

제록스가 새로운 거대시장 품목을 개발하고도 이를 상용화하지 못했던 것은 기존 복사기 사업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오지도 않은 컴퓨터 세상에 관심 쏟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안주하다가 결국 놓친 것이다.

코닥도 마찬가지였다. 필름이란 거대 시장이 있는데 굳이 디지털로, 그것도 필름이 필요없는 카메라를 새로 도전할 필요성을 못느낀 것이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서 이처럼 ””안정적인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결국 코닥은 선발주자였으면서도 스스로 후발주자가 됐다. 코닥이 다시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캐논 등이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뒤늦게 달려들었으니 잘 될 턱도 없었다. 초기에는 그래도 코닥은 DSLR도 만들며 시장에서 제법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지금 코닥이 DSLR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 코닥이 2003년 발매했던 DSLR `Pro 14N””.  1:1 바디여서 캐논 1Ds와 함께 가장 고급형이었다. 불과 4년전 모델인데 지금은? 일부 코닥팬들말고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비운의 모델로 멸종되고 말았다.

코닥의 디카 사업은 똑딱이 디카만으로 축소됐다. 똑딱이들도 늘 싸다. 성능은 좋다. 그건 카메라회사란 이미지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수십년 넘게 카메라를 만들었는데도 코닥이 카메라 회사란 느낌이 안드는 것은 참 이상한 부분이긴 하다.

코닥의 필름 라이벌 후지필름도 카메라를 만든다. (사실 아그파도 카메라를 만들었었다!) 조인성이 나오는 선전으로 후지가 카메라도 만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졌다. 보급용 똑딱이도 좋은 평을 듣는데 후지필름 카메라는 코닥과 달리 DSLR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고 봐줄 수 있다). 바로 후지필름의 `S 몇 Pro”” 시리즈다. S1pro에서 지금 S5pro까지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후지의 바디들은 니콘의 것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온전히 후지것은 아니다.

그럼 뭐가 다른가? 후지의 기술이 들어가 바뀐 부분이 다르다. 후지의 이미지처리 기술로 변화를 주어서 후지의 ~프로 시리즈들은 색감면에선 펜탁스처럼 다른 색감을 낸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그 다른 색감 때문에 후지팬들은 후지카메라를 고른다. `역시 색감은 후지””라고 고르곤 그 색감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런 마이너 카메라업체들보다도 더 작은 카메라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카메라팬들 사이에서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그런데도 쓰는 사람들은 그 독특함을 늘 침튀기며 `이런 느낌 봤어?””라고 말하는 브랜드다. `시그마””다.

시그마는 DSLR 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모를 수가 없는 회사다. 이른바 `써드파티”” 렌즈 회사다. DSLR 최고의 특징이자 최고 짜증나는 대목인데, 이 카메라들은 렌즈를 같은 회사 것만 써야한다. 니콘 쓰는 사람은 캐논 렌즈를 쓸 수 없고, 올림푸스 렌즈는 펜탁스에 끼워지지 않는다. 계속 자기네 것들만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 회사도 아니면서 렌즈만 따로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 캐논용은 물론 니콘용, 펜탁스용 등등을 다 만드는 회사들이다. 그 대표적인 업체가 시그마와 탐론이다. 카메라회사들이 내놓는 자사 전용렌즈보다 싼 값에 내놓아 큰 회사들이다.

이 렌즈회사인 시그마도 카메라를 만든다. 시그마의 디지털바디는 SD 시리즈인데, 투박한 생김새가 인상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앞서 말했듯 색감과 표현력이다. 이는 시그마만의 이미지 방식인 `포베온 방식””이란 덕분인데, 빛의 색깔을 인식하는 구조가 다른 카메라들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운다. 길거리 다니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이 시그마 카메라 쓰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을만큼 드문 바디지만, 가끔 접하는 이미지들을 보면 후보정 기술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정말 개성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그마 쓰는 사람들의 고충도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회사라는. 심지어 사진 기자들도 시그마가 카메라를 만든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다.흔히 말하는 `희귀 아이템””의 숙명이지만, 고르는 사람들에겐 그게 또 중요한 구매 이유일 것이다.

▲ 숨어있는 카메라 업체 시그마의 SD14.

왜 라이카와 콘탁스 이야기는 안하느냐고? 그러면 문제가 커진다. 마미야와 핫셀블라드, 그리고 롤라이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들 업체들은 지금 무척이나 안타까운 상황이 됐고, 골수팬들이 무척이나 민감하기 때문에 안 건드리는 것이 낫다, 라고 핑계를 대야겠다.

굳이 조금만 다루자면, 우선 콘탁스를 보라. 콘탁스를 접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메라는 묘하게 생간 미니디카 `i4r”” 뿐이다. 중고가가 오히려 출시가보다 비싸진 디카, 라는 수식어가 붙어 그나마 콘탁스란 이름에 에피소드 하나를 보태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이런 콤팩트 디카가 콘탁스의 본질이겠는가.

라이카는? 파나소닉이란 일본 브랜드를 통해서 계속 이름은 이어진다. 그러나 진정 라이카가 살아남아 이어가는 방식은 그렇게  `엇비슷한 디카””로서의 라이카는 아닐 것이다. 라이카는 올드 카메라로 팬들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숨쉰다.

▲ 콘탁스란 이름을 달고 양산된 마지막 인기 카메라 i4r. 깜찍한 디자인에 성능도 만만찮아 콤팩트 디카답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물량이 적고 단종되는 바람에 중고가가 신품가보다 오히려 더 비쌀 정도다.

그런게 카메라가 묘한 점이다. 이젠 사라진 제품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쓰이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물건이 공산품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그러면 유명 카메라 브랜드들은 어떻게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가?

그건 카메라계의 스타로 꼽혔던 인기모델들 덕분이다. 주요 카메라 모델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요즘 카메라팬들을 사로잡은 이런 신화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카메라의 역사와 경쟁 과정을 가장 잘 요약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곳이 뜻밖에도 우리나라에 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이다. 개인이 만든 사립 카메라박물관으로는 거의 최대 규모인 이곳에는 카메라팬들을 사로잡아온 스타 카메라들이 거의 모두 모여있다. 그 카메라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카메라들이 어떻게 부침을 겪으며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룰 차례다.

대한민국에서 카메라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공식 집계는 아니지만 김종세(56) 한국카메라박물관 관장이 챔피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모은 카메라는 자그마치 3000개다.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 바디만 3000개다. 보통 고급인 수동 카메라는 본체 값 못잖게 아니 그 이상으로  렌즈값이 들어간다. 렌즈는 무려 6000개. 여기에 각종 카메라 관련 장비들만 또 6000개. 모두 합쳐 1만5000개다.

그는 평생 모은 카메라들을 공개하는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한국카메라박물관(02-502-4123)을 최근 신축 개관했다.

이 한국카메라박물관 이전에 생긴 국내의 대표적인 카메라 박물관으로는 전남 나주 동신대 안에 있는 카메라박물관이 있다. 평생 카메라를 모은 이경모 선생이 동신대에 소장품을 증해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1500개 정도의 카메라를 소장했다. 그런데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일단 소장품 규모에서 이를 뛰어넘는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건물부터 카메라 렌즈 모양을 본떠 지었다. 경기도 과천 지하철 4호선 대공원으로 나오면 바로 박물관 건물이다.

건물 가운데 부분에 설치한 세 개의 판 조형물이 바로 렌즈의 단면도다. 렌즈 판이 3개니 3군 4매 구조의 렌즈다. 1930년대 독일 카를 자이스가 생산했던 헥토르 렌즈 단면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원래 이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은 2004년 서울 신림동에 처음 개관했다. 그러나 전용 건물이 아니고 일반 상가건물에다가 지하에 위치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 뒤 김 관장이 다시 사재를 털어 아예 전용건물을 지어 지난달 드디어 제대로 문을 열었다.

▲ 카메라 수집가로 박물관까지 세운 김종세 관장. 카메라 수집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건물은 아주 넓지는 않다. 1층과 2층이 전시장이고 3층은 사무실이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1층에서는 기획전을, 2층에서는 상설전시회를 열고 있다.

주 전시장은 카메라의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주요 카메라를 전시한 2층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그렇듯 전시공간이 부족해 소장품의 일부만 전시하면서 조금씩 전시품을 바꾸는데, 카메라박물관도 현재 소장품의 10% 정도인 1500여점 정도를 전시중이다. 나머지 소장품들은 기획전 등으로 차차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장은 1층과 2층이다. 1층에선 신축 개관 기념으로 올해 연말까지 이색 카메라인 `스파이 카메라”” 전시회를 열고 있다. 2층은 카메라를 발달 순서대로 10년 단위로 정리했다. 이 곳을 훑어보면 대충 카메라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알 수 있다.

▲ 2층 전시장. 카메라를 10년 단위로 정리해 카메라 발달과정을 순서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 관장은 어떻게 카메라를 모으게 됐고, 박물관까지 만들게 되었을까. 카메라에 대한 애정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 놀라운 수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소장 규모가 놀랍습니다.

=개인 차원 박물관으로 이 정도 규모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스트만코닥의 창업주 저택을 카메라 박물관으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어요. 남들이 말하기를 개인 차원으로는 아마 세계 최고 콜렉터일 것이라고들 합니다.

-외국에는 이런 카메라박물관이 많은가요.

=정확히는 모르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박물관을 만들기전 6곳 정도를 방문해봤습니다. 보통 개인차원 박물관이어서 소장품이 400~600점 정도에요. 일본에는 카메라 박물관이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아사히펜탁스 박물관이고 또 하나가 일본카메라박물관이죠. 그러나 그 규모는 아주 크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카메라를 모으게 되었습니까.

=대부분의 카메라 수집가들이 라이카를 모아요. 저도 처음에는 라이카를 모았습니다. 그러다가 차이스-이콘 카메라로 바뀌었어요.

박물관을 만들어보자고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지금부터 14년전인 1993년께였습니다. 그 뒤로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하니까 종류를 한정하지 않고 고루 모았죠. 카메라 발달사에 기여한 모델, 기술적 변화를 보여주는 모델 위주로 정리하고 희귀모델들을 구했습니다.

-카메라 사랑이 정말 놀랍습니다..

=군을 제대한 뒤 처음을 내 카메라를 마련 한 뒤로 계속 사면 모으는 거죠. 수집을 위해 바꾼 적은 있어도 돈 받고 판 적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사진 작가활동을 했고, 카메라란 물건 자체를 사랑하니까. 카메라는 ””공업예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카메라는 가지고 계십니까.

=아사히펜탁스 K2였는데, 아쉽게도 잃어버렸어요. 처음에는 일본카메라를 모았는데 모으다보니 그 이전에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 고전 반열에 오른 독일카메라들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당시 차이스-이콘의 콘타플렉스 슈퍼 중고를 거금을 주고 샀어요. 그 뒤로 외국 나갈 때마다 독특한 카메라를 사오는 거죠.

-사재를 상당히 많이 들인 것 같은데, 가족들이 반대는 안했나요.

=설득했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 외의 것은 사회환원 의미도 있으니 박물관을 짓자고 했어요.

-지금까지 카메라 수집과 박물관 건립에 들인 비용은 얼마나 됩니까.

=제가 원래 광고관련 회사를 운영했어요. 지금은 그만 두고 모든 것을 박물관 일만 전념하고 있지요. 총 들어간 돈은…밝혀도 될지 모르겠는데 한 40억원 정도 들어간 것 같아요.

우선 박물관에 10억 정도의 예산을 들일 각오를 했어요. 그리고 5억원은 앞으로 계속 카메라를 구입할 예비비로 뒀습니다. 건물 신축에 15억여원이 들었고, 나머지 10억원 정도를 내가 죽어도 박물관이 운영되도록 종잣돈으로 배정했어요.

-카메라 외의 취미는 없으십니까.

=97년부터는 골프도 끊었어요. 골프 한번 안치면 카메라 한 대를 살 수 있으니까.(웃음)

-국내에는 마니아들이 적어 희귀 카메라 구입이 쉽지 않아보입니다.

=기획으로 특별전시회를 하게 되면 주제에 맞는 카메라를 구해야 되요. 외국에서 저를 대신해서 카메라를 사줄 지인들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티 등 주요 경매사를 자주 이용하구요.

-그렇게 숨어 있는 옛날 카메라를 구하는 요령이라도 있습니까.

=고급 카메라는 그 카메라가 나올 당시 잘 살았던 나라들에 많이 남아 있어요. 옛날 부자나라들이죠. 20세기 초반 잘 살았던 나라인 영국,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에 많아요. 그런 나라들을 잘 뒤져야 합니다.

-아직도 모을 것이 많이 남았습니까.

=가격이 억대를 넘거나 정말 희귀해서 돈이 있어도 매물이 안나와 못사는 일부를 빼면 누구나 인정하는 주요모델은 거의 90% 정도 모았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박물관이 소장한 카메라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 뭡니까.

=1850년대 카메라에요. 한 5000만원 정도로 예상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수집하지 않으십니까.

=고민이긴 한데, 앞으로는 주요 모델별로 수집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디카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필름카메라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카와 필카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필카는 앞서 말했듯 공업예술품입니다. 디자인과 만듦새가 아름답죠. 그리고 누구나 말하듯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장난감입니다. 요즘 디카가 편하지만 필카처럼 은근하고 지속적인 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그 원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디지털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계의 시킴을 당하는 느낌을 줘요. 필름 카메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기계를 부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필카를 다루는 맛에 빠져드는 거죠.

[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

▲ 카메라의 원조 카메라 옵스큐라. 왼쪽 막대기 모양은 카메라 루시다. 1800년대 독일서 만든 교재다.

▲ 1850년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 1900년대 프랑스 시그리스테 카메라. 나무통을 앞뒤로 조절해 찍는다. 놀랍게도 2500분의 1초까지 조절 가능하다.

▲ 1925년 나온 라이카 1A. 위에 막대기 처럼 달린 레인지파인더로 거리를 측정한 뒤 렌즈를 조절해 찍는 목측식이다. 작고 휴대하기 좋아 당시 인기가 좋았다.

▲ 라이카 1C 금도금 복제품. 1930년대 제품.

▲ 라이카 3A. 1938년부터 1950년까지 생산된 인기 모델.

▲ 라이카 3C. 1940~45년 생산.

▲ 희귀모델 라이카 250 리포터. 1933~55년 9백여대만 생산.

▲ 라이카 M4. 1967~1975년.

▲ 라이카 M4-2. 1955년.

▲ 라이카 M6. 1995년 타이 푸미폰 국왕 즉위 기념 모델로 500대 한정생산품.

▲ 니콘 FA 금장모델. 1984년.

▲ 니콘 F 마지막 모델. 이탈리아 수집가가 금도금한 것.

▲ 롤라이 35. 75주년 기념 금장모델.

▲ 롤라이 35 TQZ. 포르쉐 디자인, 1997년. 삼성항공이 롤라이를 인수해 생산한 모델.

▲ 롤라이 A110. 1974~80년.

▲ 차이스-이콘 콘타플렉스, 1935년.

▲ 1930년대 콤파스. 독일에 주도권을 빼앗긴 영국이 최고의 카메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개발했으나 사용이 불편한 이유로 성공 못했다. 수집가들의 인기 품목.

▲ 스웨덴의 자존심이 된 카메라 회사 핫셀블라드의 1600F. 1948년.

▲ 1935년 독일.

▲ 귀여운 카메라 펜탁스 오토110. 1970년대 히트작.

▲ 1937년, 독일.

▲ 콘탁스3. 1936~1942년.

▲ 코닥의 대표 브랜드 레티나 118타입. 작고 가벼워 인기가 좋아 대량 생산한 모델.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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