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 년 뒤에 대학에 갈려구요."
"왜?"
"언니가 대학을 다니는데, 저까지 이번에 가면 부모님이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언니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게?"
"아뇨. 저는 제가 돈을 벌어서 갈려구요."

일주일 전에 한 고3 아이를 만나서 나눈 대화의 일부였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이 아이는 너무 착하고, 그게 나를 화나게 한다. 화가 났다기 보다는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 진학 문제 때문이 아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그동안도 그렇게 양보하고 희생하고, 누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남을 먼저 배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처음엔 착하다고 하고, 고운 심성을 칭찬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당연해졌을 것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앞으로도 이 아이는 그렇게 살아갈 확률이 높다.

남을 배려하고 착하게 사는 것은 찬성이다. 하지만 그것이 즐거움 없이 나를 희생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맘대로 살아가지 못할 정도라면 나는 반대한다.

그들이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를 원하고 있다면 손을 들지 마라. 내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 손들어 주기를 바라는 그들의 눈빛과 말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서 아이가 물에 빠졌거나, 조국을 빼앗긴 상황이 아니라면, 공평하게 함께 하는 방법이 나올 때 까지 절대로 손을 들지 마라.

그 고운 심성이 자신의 몸과 돈과 시간을 남을 위해 낭비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또 다시 요구한다. 요구하는 입장과 들어주는 입장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제부터 거절해야 한다. 정중하고 당당하며 단호하게 거절하라.

어쩌면 자신이 조금 이기적으로 느껴지거나 심지어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 몸과 시간과 돈을 나에게 투자할 수 있다. 그들이 던져주던 싸구려 칭찬을 이제는 버릴 시간이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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