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가족은 양해의 대상이 아니다.

개인적인 사정은 누구나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누구나 예외없이 우연이 만들어낸 일들이 수시로 당혹스럽거나 어려운 상황들을 연출해 내기 때문에 엉뚱하고 원치않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것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남들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공감하려고 노력해도 남이 겪은 일을 절대로 자신이 겪은 것처럼 느낄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남의 일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그 일을 당한 사람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마련입니다.

 

심지어는 당신이 어떤일을 겪으면서 그것을 어려워하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같은 일을 놓고도 다른 판단과 느낌을 가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수도 있지.’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하는 사람들이 부딪치게 됩니다.

 

자신이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에 지장을 주었을 때 남들이 그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아니 이해해주지 않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당연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사람은 ‘그건 네 사정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 분명히 내 사정입니다.

 

상대는 내 사정에 대해서 같이 안타까워해주고 인정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나에겐 나의 사정이 있듯이 그에겐 그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고, 나는 그의 상황을 모릅니다. 냉정하다거나 비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나의 기준일뿐,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의 이유가‘말도 안되는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서로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 준다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적인 일로 툭하면 자리를 비운다거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이 일하다 말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버리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겠지만 화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의 일이나 조직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성실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물론 성실하다는 말은 정성과 참됨을 이야기하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성실함이 꾸준함과 일에 매진함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 사정이 생겼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이해가 아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양해는 상대의 너그러움을 필요로 합니다. 이해를 먼저 요구하면 상대의 거절에 대해 서운함을 가지게 되지만, 양해를 구한다면 상대의 거절은 선택이 됩니다.

양해를 구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편안한 선택 상황이 됩니다. 서로의 입장도 이해보다는 양해가 훨씬 더 동등함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가족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상황이라고 해도 가족은 함께 끄덕여주어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말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기도 하고 이익과 손해를 끌어안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른이들에게는 양해를 구할때도 가족은 이해를 주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가족이 더 가혹하고 냉정한 모습을 많이 보게됩니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이보다 어리석고 후회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려도 팔벌려 안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그런 가족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