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되는 잣대가 들어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재는 잣대가 각각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 합니다.

 

잣대를 사용하는 범위가 넓을수록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비판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보기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흔한 예로 식당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이물질을 빼놓고 아무일 없듯이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에게만 불만을 말하고, 어떤 이들은 식당 주인을 불러서 불만을 표현합니다.

 

물론 세 사람의 입장은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잘못은 요리사의 부주의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에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주인을 부르려할 때 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식을 하다보면 그럴수도 있으니 좋게 넘어가자는 의견으로 상대가 문제삼는 것을 막습니다.

 

본인의 가슴속에 들은 잣대는 밥속에 이물질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이 엄청나게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잣대를 상대에게 강요하면서 의사표현까지도 막으려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우리는 자신의 다른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상대를 자신의 기준에 맞게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은 존중받기 원하면서 상대의 생각은 존중하지 않는 어리석음입니다.

 

식당의 예는 그저 수많은 상황속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무시당할 때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정당한 권리를 표현하는데 그것을 막으려 한다면 더욱 기분나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당신은 상대가 그것을 불쾌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한적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서로의 다른 생각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상대에게 파란색을 좋아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색상의 예와 식당의 예는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개의 예가 다르다는 것 또한 당신의 생각입니다. 두 예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제 생각입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일 뿐입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은 훨씬 덜 피곤한 곳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제 생각입니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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