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자리잡은 관행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분명히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조차 존재합니다. 법으로까지 막으려 노력하고 있는 전관예우의 그것처럼,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학생들의 선후배 관계에 이르기까지 익숙하지 않은 익숙함이 우리 사회에 퍼져있습니다.

 

비교적 긴 시간을 통해 유사한 판결이 지속적으로 형성되면서 일반적인 법적원리가 규범화된 것을 판례라고 하는데, 비슷한 사례에 대해 선배들이 내렸던 판결과 다른 판결을 내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사건을 놓고 판사마다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린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긴 합니다. 어느 정도 기준이 만들어지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상대적인 기준이 되므로 편리한 잣대가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묻고 옳고 그름을 평가함에 있어서,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이 증거 하나 혹은 상황 하나를 놓치거나 잘못 평가해서 지은죄보다 더 벌을 내리는 경우도 걱정이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평가받는 상대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 혹은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방에서 수 많은 청탁과 뿌리칠 수 없는 압박이 가득할 것입니다. 또한 그를 변호하는 사람들도 큰 비용을 받는 가장 실력있는 사람들이거나, 여전히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판결을 얻어내는 전관일 수도 있습니다.

 

전관예우의 부작용을 막기위해 2000년 1월에 관계 법령이 개정되었으나 아직도 그로 인해 피해를 받았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높은, 그리고 돈 많은 사람들도 영락없이 집행유예를 받거나 무혐의로 풀려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평할 수 있는, 공평해야만 하는 것이 법입니다. 법이 다른 권력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면 그 권력을 경계할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어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삼권분립을 해놓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가받는 사람의 지위나 영향력에 따라 같은 죄를 놓고 다른 판결이 내려지게 될수록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하기 보다 불신하고 무시하게 됩니다. 법은 국가를 이루는 근간중의 하나 이므로 같은 경우가 반복되면 국가는 국민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요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이나 판결을 놓고 이야기를 풀었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며 다른 분야들 역시 많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많은 기둥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건물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여러 기둥이 흔들려도 한 기둥이 굳건히 버티고 있으면 그 기둥을 중심으로 주위가 탄탄하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누군가 틀어진 방향으로 시작한 선례를 만들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틀어진 선례를 바로 잡는 첫번째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벽돌 몇개가 틀어졌다해도 그 위로 쌓이는 벽돌들이 바르게 놓인다면 그 벽은 문제없지만, 틀어진 벽돌을 기준으로 계속 쌓아간다면 조만간 무너지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스듬히 쌓아서 무너지는 것은 비단 기둥이나 벽뿐이 아닙니다.가정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누군가는 올바로 놓이는 첫번째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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