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쪽으로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 조카가 있습니다.

 

정말 얌전한 여자아이인데 제 집에 놀러오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아이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후에 항상 그 위에 이름을 써서 그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오늘도 유치원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써가면서 열심히 그림을 몇장 그리더니, 옆에서 관심을 보이며 칭찬하던 제 동생에게 삼촌을 그려주겠다고 종이를 새로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 궁금해 하는 동생에게 조카는 “반짝이는 눈을 줄까요? 아니면 웃는 눈을 줄까요?”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또한 머리카락 모양이나 그 밖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물어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사실 조카의 그림은 머리위에 써있는 이름이 없다면 서로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보통의 아이들의 그림보다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대상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분명히 특별해 보입니다. 보통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모델이 되는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요구하는 상황이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요구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의 아이거나 배우자라면 더 많은 요구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화가나 사진사가 모델에게 특정 포즈를 요구하는 것처럼 상대가 어떤 느낌을 받을지는 생각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모습만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요구가 아닌 명령을 하거나 강제로 그 모습이 되도록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힘들어 하거나 반발해도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직 어리고 잘 몰라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관철시키지 못하면 권위를 잃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본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무조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습니다. 질문은 최소한 상대가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과 상대의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좁혀 보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질문보다는 명령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이 더 익숙했었습니다. 그 관계가 잘 이루어지는 경우에 ‘착하다’는 표현을 듣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면 ‘어른에게 말대답을 한다’거나 ‘버릇이 없다’는 구박을 받았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재판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어린 우리에게는 해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과 표현들이 마음에 어떤 앙금을 남기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명령보다는 질문을 해야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면서 상대와 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더 좋은 관계를 갖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해야합니다.

명령은 군대에서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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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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