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원이었던 한 남자가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50세가 넘어서야 화가로서 세상에 소개되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앙리 루소입니다.

 

그런데 루소가 무명 화가였던 시절부터 일찍이 그가 그린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고물상에서 그림을 사들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모두 잘 아는 피카소였습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것인지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먼저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앞서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외에는 잘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깊이 보지 못해서 놓치는 것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진심을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흔히 말하는 NO 가 YES 인 경우나, 미소가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르는 분위기도 분명히 어색합니다. 우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 친구의 서운함을 알아채지 못했고, 괜찮다며 웃으시는 부모님의 심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이 뉘우치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이, 속으로 두렵거나 귀찮아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차피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우리는 부하직원의 노력은 잘 안보이고 결점은 잘 보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팀장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컴퓨터로 게임을 시작하면 된다는 농담이 생길 지경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은 보고싶은 대로 보고 듣고싶은 대로 듣는 것은 알지만, 문제는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만이 모두라고 믿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이 못보고 못들은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진심을, 노력을, 서운함과 두려움을 제대로 보았을까요.

저는 언제나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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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장편소설 초아 - 지금 오천년의 비밀을 만나보세요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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