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선택할때.

어린 시절은 이기고 지는 것이 명확했습니다.
보통은 둘 중 하나가 먼저 울음을 터트리면 패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잘못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서 우리는 행동에 대한 대가를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혼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좋은 편과 나쁜 편에 대한 기준 또한 확실하여 TV속에 악당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짓만 골라서 했으므로 우리의 영웅이 할 일은 검정과 흰색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내가 어느편에 서야 할 지도 간단히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온갖 고난을 겪은 우리의 영웅이 악을 물리치게 되지만, 문제는 항상 악당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도망가는 것에 있습니다.

결국 깨끗하게 승부를 내지 못하고, 악당이 다시 잘못을 저지를 때까지 미루어지는 상황으로 다음 시간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사실 이런 설정은 TV 만화 시리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또한 그리 기분 좋은 일도 아닙니다.

어른의 나이가 되면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졌습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가 않고 져도 인정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오히려 만화 속의 악당은 이번엔 자신이 졌다고 인정한 후에 다음을 기약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패배를 모른체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남의 탓이 되면 자신은 패하지 않은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살다 보니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모순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 의미와 해당하는 경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점점 더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아닌 일들이 늘어만 갑니다. 어느편에 서야 할지도 애매해 지는 일이 많아집니다. 차라리 승부가 다음으로 미루어지는 만화영화가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명암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어른들이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편과 내 편을 가르지않고, 승부를 떠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어른들이 살아 가야 할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지는 사람이 이기는 식의 양보와 배려로 살아야 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 큰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놓고 헐뜯고 비난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하든 행동을 보이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므로 저는 전혀 참견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제 고민은 언제나 우리가 그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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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장편소설 초아 – DAUM에서 ‘초아’를 검색하세요.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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