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돌아간다.


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너무 말썽을 부리는 학생을 체벌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와 방법으로 많이 맞아서 그런지, 그 시절에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중에서 다시 뵙고 싶은 분들이 몇 안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한 학생의 허벅지를 지휘봉으로 몇 대 때렸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23살의 학원 선생이었던 저는 그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대단히 시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볼멘 소리에 달려온 부모님은 저의 체벌 이유와 방법을 듣고, 오히려 앞으로도 아이를 더 혼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가셨습니다. 그 부모님들은 참지 못하고 매를 든 저의 행동에 비하면 너무나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저는 그 당시에 더 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몇 년 동안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체벌이었습니다. 참을성이 더 늘어났던 것도 이유였겠으나, 그 뒤로는 성인들이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으므로 그럴 일도 없었습니다.

 

법의 처벌이 가볍게 보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범죄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만일 제 가족이 그런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당신의 가족을 다치게 하거나 심지어 죽게 만든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겠습니까. 분노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을 피해자에게 맡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말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처벌도 받은 피해 이상의 보복을 막기위해 동등한 보복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도무지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울 때, 그 자리에서 한대 쥐어박고 싶은 화를 참고 격식을 갖추어 야단친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만드는 것에 대해 구박하지 않고 조언하고 보듬는 것도 인내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가 조금만 잘못하거나, 잘못 되어가는 것만 같아도 결론도 나기 전에 비난을 퍼붓고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전후 사정은 보도하지 않고 자극적인 헤드라인 뽑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사건이나 잘못들이 그 자리를 계속 채워 나갑니다.

 

어쩌면 제가 저질렀던 잘못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 박자 기다렸다가 비판하고, 앞뒤 배경을 보고 비난하는 약간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에 대한 판단은 너무 건너뛰지 말고 조금만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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