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간다.

입력 2007-03-19 01:30 수정 2007-03-19 09:14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신에 대한 설명입니다.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이것은 사람을 정의하고 있는 국어사전의 설명입니다. 사람이라는 말에는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라는 정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모델로 사람을 만들었고, 불교에서는 사람이 해탈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신화로 가면 신은 더 이상 끝없이 성스럽고 두려운 상대가 아닌 모습들로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들이 됩니다.

 

‘신이 계신다면 세상이 왜 이래.’

저는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을 표현할 때 전지전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게 보이므로 초월적인 존재는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신이 전지전능할지라도 신이 만든 세상이 완벽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만든 세상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듯이 사람들이 말하는 신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그 자신들의 생각입니다. 신의 마음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왜 신이 보기에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고 사람의 시각이며 사람들의 이기적인 우월주의에서 나온 어리석은 발상일 수 있습니다. 신이 보기에 사람과 개미는 둘 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정의한 표현 중에 ‘사회를 이루어사는 동물’ 이라는 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신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하고 확인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을 받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서로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못 믿을 놈들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으며 서로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장치가 그렇게 만듭니다.

 

내일 아침에도 신문이 배달될 것을 믿고, 버스가 올 것을 믿고, 물건이 배달 될 것을 믿고, 점심식사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음을 믿고, 뒤에 오는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을 믿기에 우리는 그 못 믿을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살아 갑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믿음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신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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