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과제를 평가하면서

입력 2004-04-11 09:44 수정 2004-04-11 09:44


한 학기의 6주가 지날 때 즈음,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 주었습니다. 주제는 “원하는 나의 미래 설계”였습니다.



재정상태, 직업, 직위, 취미, 존경인물과 보고 싶은 친구, 보유 도서 종류와 수량, 수면시간, 월 소득 등에 관하여, 현재 상태와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주어진 양식에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이유 5가지와 꿈을 이루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기쁨의 정도를 적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 등을 생각하여 2~3페이지로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제를 내면서도, “과연 1,700 여명의 학생들이 이 과제를 모두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사이버 세상에서 우편을 이용해 학습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수강인원의 다수로 인해 물리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5~6페이지에 달하는 생각”을 정리해서 겉 표지까지 만들고, 큰 봉투에 넣어 등기로 부친 학생도 있었습니다. 과제를 하면서 느낀 점과 저에게 별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양식에 관계없이 편지 글로, 상세히 쓴 학생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운 사정과 나약한 모습,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한 사랑,

보유한 책의 종류와 읽지 못하고 쌓아 둔 250권의 책들을 보며 느끼는 미안함,

보고 싶은 친구 50명의 이름을 모두 꼼꼼하게 기록하여 보내 왔습니다.



그들의 취미 중에는 “혼자 대청소 하기”와 “사회 문제 제안”, “혼자 노래 부르기”도 있고 5년 후의 취미로는 “영화 보면서 해석하기와 영자신문 보며 독해하기”도 있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부분은 “원하는 꿈을 이루기 힘들 것 같은 이유 5가지였습니다.



게으름과 우유부단함, 확신이 서지 않는 미래,

자신감의 부족, 아침 잠이 많은 습관,

판서 능력의 부족함, 노력 부족,

약한 의지, 대인관계의 부족함,



한가지를 꾸준히 못하는 약한 끈기, 참을성의 부족,

실천력과 결단력의 부족, 일을 미루는 습관,

시간관리의 비효율성, 꿈의 막연함,

사소한 일들에 대한 시간 낭비,

전공의 선택과 적성의 불일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경제적 곤란

혼란스러운 나라 꼴…





수도 없이 다양한 문제들 때문에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런 문제점들을 각자 모두가 스스로 알고 있었으며,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과 실천사항에는 스스로 해답을 적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문제점이나 약점, 고쳐야 할 점을 이미 알고 있으며, 어떤 것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문제이며 생각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답해 주었습니다. "미래는 원래 불확실한 것"이라고. 미래가 확실하고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면, 자신이 언제 교통사고가 나고, 언제 질병에 걸리며,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자신의 길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전공과 적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 물었습니다. 의대, 약대, 법대 등 전문적인 부문을 공부하신 분들 이외의 대부분은 공대를 나왔든, 상경대를 나왔든, 살아 가면서 직무도 바뀌고, 장사도 하게 되고, 사업도 하면서 엉뚱한 기회에 돈을 버는 사람도 많은 거라고 회신해 주었습니다.





이런 과제물을 받아 보면서 또는, 제 글을 읽고 보내 주시는 많은 분들의 메일을 받아 읽으면서 요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너무나 문명적이고, 지나치게 편리한 시대를 살면서 마음과 의지는 약해지고, 각종 매체를 통해 앞서가는 일부 사람들과 쉽게 비교하면서 생존의 의지를 스스로 낮아지게 만드는, 일종의 “사회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상태에서의 문제점과 수정해야 할 태도와 습관을 그렇게도 정확히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조금만 더 노력해서 역사를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보며, 학문의 효용성과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근 강의를 통해 만나는 다수의 직장인들 중에도 “혼란스러운 시대의 훌륭한 직업인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너무나 손쉽게 생각하거나,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는 분들의 메일을 받으면서 그 분들에게 답장을 써 드리며 몇 가지 자료를 보내 드립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시간과 장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걸어 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메일을 주고 받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으며, 목이 마를 때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 현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현재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며 좀 더 인내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건, 설명해 줘야 알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아마도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겠지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 하는 이라크 국민들,



에이즈균이 가득한 우물에서, 단 하루라도 살아있기 위해 그 물을 길어가려고 줄을 선 소말리아의 뚱뚱한 아주머니들,



3만원이면 약을 써서 결핵을 고칠 수 있는데 그 3만원이 없어 목숨이 시들어 가고 마취제가 없어 생살을 후벼 파면서 수술을 받아야 북한의 수 십만 동포들,



지상 최대의 문명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상치도 없는 햄버거를 뻑뻑하게 씹고 있는 뉴욕 할렘가의 흑인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총칼의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쩌면, 아직은 견딜만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 한국강사협회 회장 역임, 코리안리 재보험(주), 데이콤ST 근무, (주)스카우트 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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