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 30층에만 있어도 참 좋을 겁니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근무하는 애연가 박모 과장의 푸념이다. 그의 사무실은 52층. 엘리베이터가 한창 붐빌 때는 1층 흡연장소까지 내려가는 데에만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한 번 내려가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 순 없잖아요. 두 개비도 아쉬워요. 마침 동기라도 만나면 서너 개비는 기본이죠. 다만 30분 이상 비울 순 없으니 하루에 한두 번밖에 담배 피울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올해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게 된 신임 공무원 김모 사무관은 요즘 ‘흡연자의 비애’를 단단히 느끼고 있다. 힘든 고시 준비 시절을 함께한 담배이건만, 이제 한 대 피우고 오면 부서원 모두가 냄새난다고 한마디씩 한다. 청사 내 흡연실에 다녀오는 데 15분가량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1층 청사 별관 쪽 통로로 가거나, 20층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단축 운행을 하는 일과 시간에는 옥상으로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뿐이다. “이렇게 힘들게 피우느니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게 낫겠어요”라는 게 김 사무관의 푸념이다.

 

‘흡연 특급작전’ 덕에 커가는 동지애

/한경DB



서울 강남의 한 대형빌딩에 입주한 A사 정모 대리는 흡연을 위해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비흡연자인 부장이 업무 시간에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에 눈치를 엄청 주기 때문이다.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 정 대리가 요즘 몰래 찾는 지역은 복도 계단. ‘단속반’에 적발되면 사장에게 직접 보고가 들어가 경을 치게 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정 대리는 “손바닥에 물티슈 몇 장을 깐 뒤 담배를 피우다가 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물티슈에 담배를 끄고 통화하는 척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애연가 동료들과 함께 이런 ‘스릴’을 경험하며 동지애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전자업체의 경기 용인 공장은 아예 흡연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황모 대리가 입사 뒤 흡연 문제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 출근 전에 한두 대 피우고 오전 내내 참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회사 근처 공사장까지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담배를 피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매일 같은 산책(?)에 지친 그는 최근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우선 사내 흡연자 서너 명과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간다. 이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각자 승용차에서 담배를 즐긴다. 냄새가 빠지도록 차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온다. “차에서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연기가 오르기도 하지만 먼 길을 걷는 것보다 낫네요. 사내 금연도 중요하지만 흡연자를 배려한 장소는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요.”

 

얄미운 ‘담피아’…소외되는 비흡연자
이모 대리가 근무하는 금융회사는 오너를 향한 줄서기가 유난히 심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철이 되면 각종 ‘설’이 난무한다. 오너가 신임하는 X전무의 오른팔 Y부장과 Y부장이 아끼는 Z차장이 승진하고, 눈 밖에 난 W차장은 ‘물먹고’ 한직으로 발령난다는 등이다.

이 모든 인사 정보가 가장 먼저 알려지는 곳은 회사 건물 뒤편 주차장 한쪽의 흡연구역.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자리잡은 비공식적인 흡연 공간이다. 실세로 불리는 X전무가 흡연을 하러 오는 시간에 맞춰 나오는 부장급이 많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X전무 파벌을 ‘담피아’라고 부를 정도다.

여성인 데다 비흡연자인 이 대리의 불만은 계속 쌓여만 간다.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내부 평판도 좋지만 늘 중요한 정보에는 늦고, 원하는 부서로도 발령받지 못해서다. “비흡연자가 차별받는 게 확실해요. 장소가 그러니 괜히 어슬렁거리는 것도 이상하고요. 담배 피우고 오면서 정보를 하나 얻었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남성 동료도 조금 얄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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