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기생충 포스터]

신 계급사회다. 어쩌면 옛날의 계급사회보다 더 공고하고 치밀하게 계급의 유지와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옛날의 계급이 태어난 신분을 바탕으로 결정되었다면 요즘의 계급사회는 자본, 곧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은 그동안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사회적 관심에 대한 봉준호 월드의 연장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채 갈수록 공고화되는 신계급 사회의 섬뜩한 모습을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 버렸지만 영화 속에는 기택의 가족으로 대변되는 ‘흙수저’ 와 ‘금수저’ 박 사장 가족이 등장한다.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이름도 희한한 ‘맷값’부터 ‘땅콩 회항’이라는 신조어에 이르기까지 상식을 넘어선 갑질의 대상이 된 흙 수저가 겪는 수모와 냉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서 흙 수저는 결코 넘볼 수 없는 계급 간의 명확한 경계를 깨닫게 되고 좌절을 경험한 뒤 자포자기하게 된다. 영화 속 기택의 가족이 여태껏 살아온 방식이었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는 경제력 있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남매의 엄마로 결핍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심플함은 여기서 연유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적당히 친절하고 어느 정도 타인을 무시하며 자신만의 공고한 성에서 공주처럼 살아간다. 남편 동익 역시 마찬가지다. 귀찮고 성가신 것을 싫어하지만 한편으론 너그럽고 합리적인 성품의 인물이다. 하지만 실상은 기득권이 도전받는 것에 예민한 촉수를 지닌, 자신의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인간 대 인간의 수평적 관계로 기택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고압적인 자세로 기택을 무시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만한 성격을 드러냈다

영화 속에서 동익은 유난히 ‘선’을 강조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정한 선이지만 그 선을 넘는 행위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선을 넘으려는 순간 바로 제재를 가하며 상대방의 처지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것이 있다. 흙 수저는 이미 경계를 잘 알고 있다. 선을 넘는 순간 어떤 제재가 돌아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반면 금수저는 잘 모른다. 문제가 생겨도 만병통치약인 ‘자본’ 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돈으로 구슬리거나 폭력으로 위협하고 여론의 도마에 올라도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자본’이라는 믿음직한 백그라운드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연교처럼 “저는 고생을 안 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라거나, ‘남의 일’이라 치부하고 모르쇠 모드로 일관하다가 정작 자신이 경계를 침해한 사실을 몰랐던 동익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함이 결국 화를 불러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금수 저들로만 이루어진 아방궁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기생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살 수는 없다. 숙주와 기생이라는 사이클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아이히만의 죄는 결국 '생각하지 않은 죄'였다. 박 사장 가족의 비극을 ‘악의 평범성’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그들의 비극은 타인의 입장을 ‘상상’ 하는 능력의 부재, 나와 가족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죄’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영화는 ‘하류층은 선(善) 하고 상류층은 악(惡) 하다’는 이분법적 관념에서 탈피해서 신분 상승의 욕망과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탐욕스러운 하류층의 모습을 핍진성 있게 그려냈다. 어떤 계획도 없이 지하로 숨어든 기택과 자본에 기댄 채 허황된 미래를 꿈꾸는 기우의 모습은 결국 자본에 순응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씁쓸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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