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전설이 된 섹스

입력 2012-11-08 09:36 수정 2012-11-08 09:54
K회장의 학창 시절은 존재감이 없었다.
전혀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 했던 것이다.
공부, 운동, 모범, 말썽 등의 단어로 보면 중간쯤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어느 누구도(적어도 또래 학생들은) K회장과 싸움을 하면 이길 수 없었다.
K회장은 쥐도 새도 모르게 무술 실력을 키워 왔다.

어려서부터 산 타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가 안돼 합기도라도 배워둔다고 시작한 무술은 고교를 졸업할 때 쯤에는 나무 젓가락으로 송판을 꿰 뚫을 만큼의 실력자가 됐다.

집에서 아주 먼 곳의 도장으로 운동을 하러 다닌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자 했음에 있다.
K회장은 대학 진학을 스스로 단절했다.
실력도, 마땅히 갈만한 학과도 없었고 집안 형편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참 오래전 명동에 OB캐빈 「심지」와 같은 다방, 전원, 필하모니와 같은 음악감상실이 있던 시절, 왠지 명동이 좋아 명동을 어슬렁 거렸다.

K회장이 처음으로 싸움을 하게 된 곳도 명동이었다.
상대는 명동상권을 휘어잡으려고 1년에 500번 넘게 싸웠다는, 그리하여 마침내 명동의 유흥업소와 요식업소 등에 개인세무소(맥주, 쌀 등 모든 물품에 세금을 매겼다고 함) 영수증을 발급하게 된 조폭 두목.

결과는 비긴 것으로 끝났지만 실은 K회장이 이기고도 「졌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그후로 두사람은 친구가 됐고 K회장은 일자리를 얻었다.

명동에 기가막히게 예쁜 미인이 유흥업소를 개업하면서 조폭 두목의 추천으로 일약 전무가 된 것이었다.
K회장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벼락 출세(?)를 해 정신이 없을 지경이 됐다.
그렇지만 정작 정신이 없는 것은 술판, 싸움판, 섹스판, 노름판...판.판.판이 문제였다.

오래지 않아 사표를 냈다.
미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K회장은 「젊은 놈이 있을 곳이 못 된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곤란한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말해보라」고 미인이 말했다.
K회장은 「섹스 때문에 견디기 어렵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미인은 피식 웃었다.
「참 순진한 친구로군.」
온 천지에 널린게 계집이고 손만 뻗으면, 전무라는 직함만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데도...

얼마뒤 미인과 K회장이 결혼했다.
K회장은 미인이 밀어준 자금으로 섬유수출업에 뛰어들어 대부가 됐다.
명동에 20층이 넘는 빌딩을 마련했고 딸을 낳아 잘 키웠다.
딸은 명문대를 나와 교수가 됐고 검사와 결혼했다.

K회장은 살아생전에 일시(日.時)가 정주영회장과 같다고 했다.
경신(庚申)일, 갑신(甲申)시.
시상편재(時上偏財)가 발복하면 대부가 틀림없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좋은 재(財)는 많은 재물로 되고 훌륭한 마누라도 있음을 나타내니 이 어찌 아니 좋은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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