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는 축제

국제 마케팅을 위한 수단이 많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박람회이다. 우선 박람회장에 들어서면 축제의 냄새를 맡는다. 장사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흥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암울할 때도 시장은 늘 흥청대고 자유로웠으며 축제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좁은 공간에서 각자 자기 제품을 놓고, 이웃 부스의 참가자와 바이어의 수주를 경쟁해야 하지만,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서로의 제품을 같이 놓고 비교하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들라고 조언하기까지 한다. 박람회장에 가면 업계의 최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그래야만 다른 업체보다 앞섰다는 것을 산업계내에 보여줄 수 있고, 수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좋아 박람회에 참가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실제로 근대 이전에는 주로 국가나 통치권자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행사로서 축제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으나, 오늘날 일반적인 의미의 박람회는 상업적인 성격의 국제박람회를 지칭한다. 따라서 박람회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제 정책적 사명으로, 산업과 무역을 부흥, 발전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아직도 개발도상국에서는 특정 산업 분야를 전시하는 전문 박람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어, 모든 산업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박람회를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정부에서는 국민 경제 교육의 측면에서 국가적인 축제로 규모를 키우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1982년에 개최된 ‘서울국제무역 박람회 82(SITRA 82)’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SITRA는 전시 산업계 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축제가 되어 온 국민에게 박람회가 비로소 친숙한 단어가 되었으며, 한국내 전시회 회수가 대촉적으로 증가하여 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SITRA는 이후 한국의 산업규모가 성장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문박람회가 발전함에 따라 1994년을 끝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았다.

실제로 박람회의 시작도 축제로 시작하였다. 박람회가 문헌상에 나타난 최고의 것은 구약 성서의 에스더 1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아하수에러스 왕이 슈산 성에서 모든 방백과 심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왕이 180일 동안에 걸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와 위업이 혁혁함을 나타내어라’하였는데 기 것은 곧 모든 산업 제품, 업적을 전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박람회의 효시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시회는 처음에는 지역적인 소규모의 시장에서 발전되었다. 특히 대상(大商)들이 통과하는 주요 지점이나 종교적인 축제를 위하여 모이는 곳에서 점차 발전하였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고대 무역 도시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상업 박람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박람회의 목적은 물건을 진열하여 판매하는 데 있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박람회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 시장인 5일장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는 610년 수양제 집권 6년 차에 낙양에서 열린 항주 등지의 남방과의 운하 개통을 축하하면서 큰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최초의 박람회로 보고 있다. 이때 수양제는 변방의 여러 추장들을 불러 둘레가 5 천보가 되는 공연장을 설치하고 온갖 기예를 하는 사람만 8천 명이 등장하는 큰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또 전국 각지에서 온 상인들은 낙양에서 각종 진귀한 물건들을 사고 팔았다고 한다.

내가 박람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코트라에서 전시업무를 맡으면서부터이다.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온전히 내 책임하에 진행하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업무를 하다 보니 박람회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미국의 박람회 위원회 (Trade show Bereau)에 개인적으로 가입하여 박람회의 마케팅적 속성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낸 첫 책이 1993년에 출간된 ‘박람회와 마케팅’이다. 이후 수많은 박람회를 주최해보고, 사업가로서 참가해보기도 했다. 매번 그 때마다 박람회장에 가면 축제를 나가는 것 같고, 끝나면 연극으로 된 인생의 한 막이 내려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 아쉬운 마음에 텅 빈 전시장의 내 부스 안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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