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아!허생아!(3)]허생, 프레젠테이션의 대가

입력 2006-08-23 10:23 수정 2006-08-23 10:23
허생의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보자. 이론으로 탄탄하게 무장한 허생은 변 씨에게 돈을 빌리러 갔을 때 비굴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성안의 최고 부자 변 씨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말은 길지 않았으나 충분히 상대를 사로잡았다는 점은 허생이 돌아간 후 왜 그렇게 행색이 초라한 사람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냐는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에 변 씨가 답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이건 너희들이 알 수 없는 일이다. 무릇 남에게 빌리러 오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크게 선전하고 신의가 있음을 자랑하지만 얼굴빛은  비굴하고 말은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옷은 남루하지만 말은 간단하고 눈은 오만하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재물이 없어도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하려고 하는 바가 작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안 줄 것이면 모르지만 기왕에 만 냥을 줄 바에야 성명은 물어서 무엇 하겠느냐.”


마케팅 예산을 집행하는 광고주들은 프레젠테이션을 볼 때 그 내용보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가 하는 부분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설득’이다. 그리고 그 설득의 차이는 전략의 차이라기보다 사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궁극적으로 전략을 움직여서 실제 타깃에 적중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변 씨는 결국 이 ‘사람’을 알아보았고, ‘사람’을 신뢰한 것이다. 허생이 펼치는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을 궁금해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당당함을 믿은 것이다.


오늘날 프레젠테이션은 직장인에게 있어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직장에서의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 3년차 허연생 씨는 사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의 대가로 유명하다. 오늘도 허연생 씨는 임직원들 앞에서 팀의 기획안을 완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는데 후배가 황급히 뒤를 쫓아왔다.


“선배, 어쩌면 그렇게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요?”
같은 부서의 후배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후배는 자기도 다음 달에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떨린다며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성화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 절대 떨지 않는 강심장을 타고난 것 같다며 후배는 부러움이 담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허연생 씨는 후배에게 자신의 너무나 부끄러웠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고교 시절, 물리 선생님이 다음 시간에 발표할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느닷없이 28번을 불렀다. 그날이 하필 28일이었고, 28번은 바로 그녀의 번호였다. 그녀는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다 보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별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발표 전날이 되어서야 온갖 참고서를 잔뜩 모아 놓고 짜깁기를 해 가며 대충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드디어 발표하는 날. 교탁 앞으로 나가 연생은 일단 모아 놓은 자료를 잔뜩 펼쳐 놓았다. 그러자 친구들과 선생님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 마디는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발표하는 내내 다리는 후들후들, 가슴은 콩닥콩닥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 참고 자료를 읽어 내려가기 바빴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그만 들어가라고 밀어낼 정도였다. 평소에 씩씩하고 활발해 발표력이 꽤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경우였음을 그녀는 뼈저리게 느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하며 말하다 보니 논리가 서지 않고 남의 생각을 전달하기 급급했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그녀는 후배들에게 학교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연생은 우선 후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부터 설명해 주었다.


“식사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합니다. 가장 비싼 양식을 단돈 천 원에 먹을 수 있으니까요. 개교기념일엔 삼계탕 한 그릇이 오백 원, 값싸고 영양 만점입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을 놓쳤다 해도 걱정 마세요. 한마음식당은 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공깃밥이 오백 원입니다. 전공서적 외에 교양을 쌓으려면 한마음식당 옆의 인서점에 문의하세요. 학교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자판기 커피는 지구 최후의 날까지 단돈 백 원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학교 소개로 그녀는 후배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배가 되었다. 설명을 들어야 하는 후배들 입장에서 설명하니 후배들은 전혀 지루해 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과 후배들이 꼭 알아야 할 점 등을 미리 꼼꼼히 조사해서 얘기를 하니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경험에서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이든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꾸준히 공부해야, 필요할 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임기응변도 기본기가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회사에 입사한 뒤 그녀는 학창시절에 쌓은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실무 경험을 쌓는 한편, 실무에 필요한 이론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침내 팀의 프레젠테이션은 그녀가 도맡게 되었고, 회사를 대표하는 자리에 나갈 기회도 생겼다.

 

허연생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후배에게 물었다.
“프레젠테이션의 성공은 무엇에 달려 있을까?”
“글쎄요. 자료 조사?”
“그건 기본이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은 회의에 참석한 그 누구보다 자료를 많이 조사해야 하는 거잖아. 그 다음엔 정리한 자료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자료를 읽어 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전달해서 설득해야 하는 자리니까. 그렇게 해야만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할 수 있잖아. 그걸 갖추고 난 후 프레젠테이션을 멋지게 마무리해 주는 건 바로 ‘자신감’이야.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이 안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자신감. 그런 자신감이 있으면 딱딱한 회의석상에서도 웃으며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그렇군요. 자신감이 없는 건 아무래도 제가 준비가 부족해서인가 봐요.”
“그래, 사람들은 프레젠테이션의 내용보다는 발표자의 태도와 목소리에 설득된다고 해. 준비가 빈약하니 당연히 자신감이 없고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떨게 되는 거지.”
“저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더 노력해야겠어요. 다음 달에 실전에 나가기 전에 리허설을 해볼 테니까 선배가 좀 봐줘요.”
“그래, 우선 누구보다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상대를 확신시킬 수 있으니까.”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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