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까” “잘까” “할까”

인생 여정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생각하나를 붙잡으면, 몸은 그 생각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반응한다.

念(생각 념)= 今(이제 금) + 心(마음 심)

생각의 사전적 정의는 “결론을 얻으려는 관념의 과정,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정신 활동”이다. 정신활동은 눈으로는 볼 순 없지만 변화무쌍한 자극을 통해 행동을 자극한다. 언제부턴가 생각의 날개가 꺾인 듯,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잘 풀리는 생각은 긍정을 자극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각은 심각한 고민을 부채질한다”

사진:픽사베이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난다. 고민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두려움이 편승된 고민은 그 파괴력이 굉장하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을 소개할까 한다. 강의가 본업인 필자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강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 있는 주제라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앞선 나머지 강의 제안을 덜컥 수용하고 말았다. 할 수는 있지만 대상이 맞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각색하면 안 될 것도 없겠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던 것이다. 평소 신중한 성격임에도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순간의 욕심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켜버린 것이다.

역시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늦어 버렸다. 벌써 공문으로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발을 빼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할 수 없이 마음을 추스르며 준비를 시작하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꼬리 물듯 끝도 없이 밀려온다.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는 두려움은 쉽게 통제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곁을 지키던 '자신감'은 어디로 출장을 갔는지 그때는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이 떠난 자리는 두려움이 왕 노릇 한다”

“두려움”이라는 놈은 내 마음이 제 집이라도 되는 양 슬그머니 자리를 잡더니, 마치 주인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닌가? 가슴 한편이 짓눌린다. 하루 온종일 가시지 않는 진하고 뻐근한 통증이다. 한동안 가슴을 옥죄던 이 놈은 점차 아랫배를 자극하더니 위로 자리를 바꿔 앉는다. 소화를 방해할 목적이다. 양 어깨는 물론이고 뒷목까지 뻣뻣하게 만든다. 밤엔 잠자는 것도 훼방 질이다. 밤새 뒤척이다 깨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면, 눈엔 모래가 들어간 듯 서걱서걱하다. 그렇게 말 못 할 나만의 고통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진을 쳐놓고 끊임없이 괴롭힌다. 거절했어야 할 강의를 선택한 것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인 셈이다.

드디어 문제의 강의가 끝났다. 부담이 컸던 만큼 예상 질문까지 준비했던 게 주효했는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아팠던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강의가 끝났다는 것이 인정되는 순간, 평안이 찾아왔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결정한다(오프라 윈프리)”

당시 필자가 붙잡았던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붙잡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준비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이다. 그렇게 붙잡힌 두려움은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정확히 11일 동안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 다녔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외면하지 못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지금 붙잡고 있는 그 생각은,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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