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쓰노미야 가는 길의 야생화

오늘은 준코 가요코와 오쿠타마를 걷는 날이다. 오메역에서 만나 오쿠타마로 가는 열차를 탔다. 도쿄 도심에서 열차로 2시간여 떨어진 곳이다.

여기도 도쿄라니 넓기도 하다. 가요코는 일본 전국의 유명한 산을 올랐고 해외의 높은 산도 많이 다녔다. 270킬로 달리기 행사에도 참가했으며 주말이면 카약을 즐기는 스포츠 우먼이다.

그녀가 안내 팜플렛과 구글 지도를 보며 꼼꼼히 길을 챙긴다. 아버지가 과거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휴가 때 가져온 맛있는 명란젓 맛을 기억한다. 프리랜서 작가답게 박식하다.

오쿠타마의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와 보니 놀랍다. 계곡은 깊고 물이 맑으며 수량도 풍부하다. 수력발전소의 댐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지럽다.

오쿠타마 계곡에서 카약을 즐기는 젊은이들

계곡물에서는 젊은이들이 카약을 즐기고 있다. '달리기 등산 카약 '의 삼종경기에 참여한 조별팀이 우리 옆을 부지런히 지나간다.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가요코는 그들에게 빠짐없이 격려를 보낸다.

물가에 앉아 준코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었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선진국의 여유가 느껴진다. 정치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고 인생을 즐겁게 살려고 한다.

4시간여 걸은 후 다시 우에노로 돌아왔다. 정 사장의 자택은 우에노 동물원 근처에 있었다. 우에노의 이미지와는 판이한 조용한 주택가다. 자택 근처의 아담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사토 대신 유코라는 정 사장의 일본인 친구가 함께 했다. 기품있는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다. 젊을 때는 미색으로 이름을 날렸겠다. 남편이 일본의 홈런왕 왕정치와 함께 뛴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라 한다.

오늘도 코스 요리였는데 서구풍을 가미한 일본식 음식이다. 양은 많지 않지만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내일이면 도쿄를 떠나는 내게 정 사장이 격려 차원에서 워킹화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직 남은 여정이 길고 짐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 처지라 정중하게 사양했다. 출발 전에 한국체육진흥회로부터 워킹화를 하나 받은 것이 배낭 안에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정 사장이 준비한 택시에 오르며 그녀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좋은 음식을 이틀씩이나 대접받고 대화도 즐거웠다. 도쿄에서 또 한 사람의 좋은 친구를 얻었다.

전철역 앞에서 내리는 준코와 가요코와도 재회를 기약하며 손을 흔들었다. 유코는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집이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우리 인생이다.

다음 날은 도쿄 근교 치바현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체크아웃을 끝내고 여유있게 1시경 숙소를 나와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걸어가다가 이 동네 마쓰리(축제)와 조우했다.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추어 동네 주민들이 핫삐 차림에 미꼬시(가마)를 메고 흥겨운 얼굴로 행진한다. 많은 주민이 그 뒤를 따른다. 조금 있으니 초등학교 학생들이 작은 미꼬시를 메고 지나간다.

큰 북을 실은 수레에 앉아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북을 치고 있다. 제법 장단이 맞다. 마쓰리를 앞두고 상당기간 연습을 했을 것이다

일본은 동네마다 각종 마쓰리가 많다. 자기 비용으로 옷도 준비한다. 마쓰리에 참가해서 그날 하루를 최대한 즐긴다. 관제 축제가 아니고 자발적인 주민 주도형이다.

마쓰리를 통해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의 일체감과 단합을 다진다. 이것이 동네의 단합을 넘어 지역 그리고 국가 단위로 확장된다.

축제의 중심은 그 동네의 신사이며 축제 때 메는 미꼬시는 신사에서 보관 관리한다. 신사에서 모시는 800만 신의 제일 위에는 일왕이 있다.

일본은 지진 태풍 쓰나미 화재 등 재해가 많은 나라다. 집을 목재로 짓기 때문에 지진을 어느정도 흡수하는 역할은 하지만 화재에는 약하다.

재난을 당하면 동네 주민이 함께 대처해야 한다. 때문에 단합을 위한 장치인 축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단체 행동에서 일탈할 경우 '무라하치부'라고 해서 동네 주민이 단합해서 응징했다.

오늘날 일본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지메의 원형이 이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직 속에서 티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도 있다.

오늘은 오랜 친구 와다의 집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그의 집은 소부선 '시모사 나카야마'역 인근에 있다. 좀 일찍 도착해서 벤치에 앉아서 원고를 정리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다 됐다. 개찰구 근처에서 그가 서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물어보니 10분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부인과 시집간 딸 미카코까지 와서 엄마를 돕고 있었다.

저녁에는 꼬마들을 데리고 아들 부부도 왔다. 아들 마사히로는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한국 대전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미리 준비해둔 뜨거운 욕탕에서 피로를 풀었다. 욕실에서 나오니 와다가 자기가 입는 파자마를 가져와서 갈아입으라 했다. 그 보다 내가 키가 조금 커서 입으니 껑충한 게 칠부바지 같다.

욕탕 물은 버리지 않고 나중에 집주인 와다를 비롯해서 부인 딸 며느리까지 다 들어간다. 이것이 일본의 관습이다. 일본은 때를 미는 습관이 없어 목욕물을 순서대로 같이 쓴다.

내가 와세다 대학 연구소에 나가 있을 때 교수님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내게 일본 문화를 소개해주려고 바쁜 와중에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다. 거의 40년 지기 친구다.

와다 가족과

그의 가족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미카코가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부인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틈도 없이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먹을 것을 날랐다.

어린 시절 봤던 미카코가 어느새 40살을 넘긴 중년 주부가 되었다. 배낭을 메고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빨랫거리부터 달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뽀송뽀송 옷들이 잘 말라 있었다.

다음날 아침 부인과 미카코가 먹을 것을 잔뜩 챙겨준다. 무겁기는 했지만 이틀간 요긴하게 활용했다. 전 가족이 함께 인근 사찰을 견학하고 역에서 헤어졌다. 그들이 내게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에노역에서 조반선 특급을 타니 첫 정거장이 오늘 목표로 하는 이바라기현 현청 소재지인 미토다. 미토 4정거장 전인 이와마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보리가 누렇게 익은 들판을 지나간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12시를 알리는 음악이 확성기에서 흘러나온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에델바이스' 멜로디다. 이 동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다.

잠깐 쉬는 동안 카톡을 확인하니 조카 보윤이가 후쿠오카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후쿠오카는 남쪽 큐슈인 이곳에서는 까마득히 먼 곳이다.

걷는 길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무슨 꽃들이 종류가 이렇게도 많은지. 갑자기 코 끝을 자극하는 익숙한 향기. 하얀 아카시아 꽃이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려 있다.

미토역 관광안내센터로 가서 숙소 문제를 상의했다. 그런데 일본어 발음이 좀 이상하다. 중국 아가씨다. 일본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가는 곳마다 온통 사람 구한다는 포스터다.

근처에는 싼 숙소가 없어 한 정거장 떨어진 가쓰다역 근처의 캡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식당에서 보온병에 온수를 넣으며 서빙하는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들은 한 번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식사를 하라고 권했다. 음식이 맛있다고 자신한다. 그녀들은 내가 쓰는 일본어가 아름다우며 일본인보다 낫다고 한다. 이러니 밥을 먹지 않을 수 없다. 650엔짜리 뷔페인데 훌륭하다.

식사를 하는데 프론트의 중년의 남자 직원이 열차시간표를 복사해서 가져왔다. 그는 내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 미토는 에도 시대 도쿠가와 집안의 혈족들이 번주를 맡았던 3개 번 중 하나다. 나머지는 아이치와 기슈(지금의 와카야마 현)다. 일정이 맞지 않아 미토는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간다. 사람들이 친절하다.

가방을 멘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아이가 탄다. 조금 두리번거리더니 '문열림 단추'를 누르고 홈으로 나가더니 다음 칸으로 옮겨간다. 익숙한 행동이다. 예쁜 그 아이의 모습도 가슴에 담았다.

소나무가 빽빽한 '관동 교류의 길'

오야마역에서 다른 열차로 바꾸어 타니 우쓰노미야는 가깝다. 다음 정거장 고가네이역에서 내려서 우쓰노미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키 큰 소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관동 교류의 길' 을 지났다.

길이 쭉 뻗어 있어 기분 좋게 걷는다. 각종 야생화들이 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조금 덥기는 하지만 좋은 계절이다. 뉴스를 들으니 남쪽 지방에서는 장마가 시작된 모양이다.

가다가 라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아가씨가 행동이 민첩하고 친절하다. 목소리가 기운차고 행동이 씩씩하다. 라면 맛도 A급이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며 그녀에게 한 마디 했다. " 당신은 이 가게의 보물입니다. 이 가게에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도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쓰노미야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26킬로를 걸었다. 관광안내센터로 가니 이번에는 50대 한국인 여성이 일하고 있다. 일본어가 유창한 것을 보니 재일동포 같다. 역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받았다.

지금까지의 게스트 하우스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곳이다. 값은 2100엔으로 저렴한데 독실이다. 방에 들어가니 깨끗한 침대에 방도 넓고 소형 냉장고도 있다. 공기청정기도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위클리라는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인데 오사카에도 몇 군데 있고 아오모리에도 있다고 한다. 팜플렛을 받았다. 아오모리에서는 역 관광센터에 가지 말고 바로 전화로 예약을 하도록 하자.

우산을 쓰고 역 서쪽 출구까지 걸어가서 군만두를 먹었다. 군만두가 우쓰노미야의 명물인데 역 서쪽 출구 인근에 수많은 만두가게가 밀집해 있다.

새 일왕의 즉위를 하늘에 고하는 제사인 '다이조사이'가 11월에 열린다. 여기에 사용될 쌀이 이곳 도치기현과 교토의 것으로 결정되었다. 양 지역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밤 시간이라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궁내청의 간단한 발표는 있었지만 쌀이 선정되는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1,300년전의 결정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

문명화된 대명천지에 과학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부 언론은 비판한다. 지금도 여전히 '거북 등껍대기 점'으로 결정한다. 내일은 군마현 마에바시로 이동한다.

이곳 출신 오부치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이 미래지향적인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을 실시했으며 2002년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 개최했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김대중 오부치 선언'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관심은 현재와 미래에 있다. 그들은 '과거는 물에 흘려보낸다'고 생각한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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