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수가 부쩍 줄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남자) 친구가 생겼는지, 외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아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불안해서 문 밖에서 아이를 기다리게 돼요”

“감정이 널 뛰듯 해요.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푸념이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지만 내 아이만은 비켜갔으면 하는 바람을 한 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모든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고 반항하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가 하면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마디 건넸을 뿐인데 간섭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이쯤 되면 저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온순하고 착한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대신 반항적이고 변덕스러운 십 대 자녀를 맞이한다는 것은 아무리 부모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설기만 하다. 매일매일 아이와의 전쟁에 지칠 때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긴다.

사진:픽사베이

신경과학자 B. J. 케이시는 사춘기를 문제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춘기를 하나의 문제로 생각하는 관점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정말 특별하다. 사춘기는 제 구실을 다하는 적응기이며, 아이들이 그 시기에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인생이란 위기와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들 역시 삶을 돌아보면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자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춘기는 성장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서양 속담에도 “사춘기를 사춘기 때 겪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온다. 죽을 때까지 오지 않으면 관 속에서라도 온다”라는 말이 있다. 방황해야 할 시기에 방황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시기에 방황하느라 인생의 귀한 시간을 낭비할지도 모른다. 아이마다 사춘기를 겪는 양상도 제각각이지만 힘든 사춘기의 강을 무사히 건넌 아이들은 한층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넘치는 에너지의 발산도 서서히 줄어들고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자시만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간다.불안하고 당황스러운 것은 부모만이 아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춘기의 기본 정서는 두려움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길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이다.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미래 앞에 놓인 아이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와 시도 때도 없이 변덕을 부리는 감정 변화도 낯설다. 독립하여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기를 원하고 부모에게서 거리두기를 시도하지만 아직 홀로 설만큼 자아가 확고한 상태는 아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 우울과 외로움을 겪어내면서 아이는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서기 위한 준비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미숙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은 조금씩 성숙해진다.

누구에게나 십 대는 어렵다. 흔들리는 것만 생각하면 위기일 수 있지만 마음의 구조를 재정립하고 다듬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또 다른 기회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조금의 공부다. 아이들이 마주한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심리적인 문제들을 이해하면 지금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충동을 수용하고 조절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불안이나 혼란해지지 않도록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부모의 사랑과 지지는 아이들이 계속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준다. 진지하게 소통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과 애정에 기반한 신뢰가 있다면 위기의 십 대도 행복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어느새 부쩍 자란 아이 모습을 보면 부모의 불안한 물음표는 대견한 느낌표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부모 노릇에 정답은 없지만 아이를 이해하고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만 있다면 ‘좋은 부모’ 되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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